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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신재현은 통증과 함께 깨어났다. 몸이 어느 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며 반사적으로 저항을 받는 감각 또한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이질적인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낯설지도 않은 공간이었다. 몸의 오른쪽은 차창, 왼쪽은 다른 좌석. 신재현은 고속철도의 차창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 정보 습득을 위해 시선을 돌리는데 시야 옆으로 기괴한 장면들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어서 물어뜯고 있었다.

신재현은 아, 짧은 탄식성을 내뱉으며 자신의 좌석에 슬쩍 몸을 묻었다. 확실히 이건 ‘다른 세상’이었다. 내 것으로 삼은 것 없는 세상. 그렇다면 예의 후배님의 퀘스트에 휘말렸거나, 혹은…….

그는 검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좌석 손잡이를 두드리고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안주머니에 핸드폰이 들어 있다니, 얼마나 편의적인 상황 설정인 것인지.

손의 장갑을 한쪽만 벗겨내고는 화면을 터치하자 익숙한 홈 화면이 그를 반겼다. 메시지 앱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이것은 우연과 필연이 엮인 세상이 아니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구성된 시간과 공간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앱을 실행하자 수십 개의 대화 기록이 보였다. 그리고 최상단에 자리한 것은 후배님, 박문대와의 것이었다. 바로 몇 분 전에 마친 대화는 짧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VTIC의 청려와 TeSTAR의 박문대는 우연히―이 부분에서 신재현은 피식 웃었다― 부산을 여행하는 힐링 예능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고, 시작점은 서울역이었다.

구성원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부산역이 되어야 하니 그사이 가능한 자리를 지키자, 어차피 끝과 끝의 차량에 앉아 있으니 서로 볼일은 없겠지만, 이라는 내용 사이사이에 박문대가 은근히 짜증을 담은 것이 보였다.

신재현은 화면을 가볍게 쓸었다. 박문대의 메시지 하나를 잡아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마치 후배님을 잡아 위아래로 흔드는 듯한 느낌이라 조금 즐거워졌다.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편할 텐데.

휴대폰 화면을 끈 신재현은 비로소 아까부터 정면에서 반짝이던 시스템 창에 시선을 줬다.

 

<SYSTEM: 이곳에서 내보낼 한 사람을 선택하시오>

 

목적이 명확한 것은 나쁘지 않다.

신재현은 그 한 사람을 결정했다.

 

* * *

 

박문대는 짙고 비릿한 철 냄새를 맡으며 깨어났다. 당황스러웠지만 몇 차례의 기묘한 경험을 하며 체득한 것들이 있었다. 서둘러 상황부터 파악했다. 그리고 박문대는 어이가 없어져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살다 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KTX, 그리고 갑자기 일어난 유혈사태. 구체적으로는 좀비 사태.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박문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이거, 그거지.’

관객수 천만을 넘어간 좀비 영화의 세상이라니. 도대체 왜? 아니, 왜긴 왜겠어. 시스템……. 박문대는 서둘러 큰달을 불러냈다. 그러나 큰달로부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그를 대신해 파란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SYSTEM: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시오>

 

무사히, 라. 박문대는 상황을 분석하기를 멈추고 영화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대부분 다 죽었던 거 같은데.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한들 운이 없으면 탈선 상황에 죽어버리는 것 아닌가. 아니면 잘못 스치기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차려야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변에 멤버들이 없다는 것. 그리고 불행인 점은…… 이 열차의 저 끝에 신재현이 타고 있다는 것. 결국 신재현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다. 이 퀘스트를 해결하고.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퀘스트를 위해 생성된, 혹은 자신들이 투입된 듯한 세계에서 다른 이들을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박문대의 목표는 하나로 수렴되었다.

신재현과 함께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자.

박문대는 메시지 앱을 실행하고 신재현에게 말을 걸었다.

 

<APPLE: 어디냐>

<CHR: 가는 중>

 

대답은 빨리 왔으나 박문대는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이곳은 열차의 앞쪽, 신재현은 열차의 뒤쪽. 그사이에는 이른바 좀비들이 가득한 공간이 있다. 아이돌로 몸을 관리해 온 녀석이 뚫고 지나오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박문대는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다.

 

<APPLE: 오지마대전역에멈추면합류하자>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박문대는 초조해져 입술을 씹었다. 이 녀석, 괜히 무리하다가 물린 거 아닌가.

 

<APPLE: 야 괜찮아?>

<APPLE: 너 물렸어?>

<APPLE: 내가 갈까?>

<CHR: 그래요 대전역에서>

 

박문대는 안도하며 몸을 늘어뜨렸다.

 

신재현과의 합류는 어렵지 않았다. 녀석은 그 늘씬한 몸을 움직여 역에 내렸다. 몇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신재현을 알아보는 것은 금방이었다. 박문대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야, 너는.”

“후배님.”

신재현은 후드를 뒤로 넘기며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눈을 슬몃 접어 웃어 보였다.

“얼굴 드러내지 마.”

“걱정 마요, 못 알아보던데.”

못 알아봐?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 두 명을 넣자니 개연성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던 모양이지.”

우리는 그냥 평범한 이십대 남자로 보이는 모양이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신재현은 박문대의 손을 잡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접한 감촉에 박문대는 흠칫 몸을 떨었다. 신재현은 박문대의 손을 꼼꼼히 보고는 그의 얼굴과 목을 살폈다. 그리고 박문대의 어깨를 잡고는,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팽글 돌면서 박문대는 헛웃었다.

“너 뭐 하는 짓인데.”

“후배님이 변하면 곤란하니까, 확인차.”

너나, 작작, 이를 갈면서 말하려니 신재현이 다시금 웃었다. 좋아요, 후배님. 앞으로도 조심해요.

“역사로 나가지 말고, 다시 열차로 올라가자.”

“음, 그래요.”

신재현은 바로 박문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박문대와 신재현은 KTX에 올라탔다. 이제 곧 사람들이 몰려오고,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관여하지 말고 이곳에 조용히 있자고 합의했다.

“의외네.”

“뭐가.”

“후배님이라면, 사람들을 구해주자고 할 줄 알았는데.”

“……구할 수 있었으면 그랬겠지.”

박문대는 한숨에 가깝게 말했다. 신재현과 합류하기 전까지 박문대라고 손만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기억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찾아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박문대의 말에 동의하거나, 무시하면서 영화의 흐름대로만 움직일 뿐이었다.

여기에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덧붙이니, 이 세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바꿀 수 없는 엑스트라.

반면에, 엑스트라인지라 사람으로 인지되어 좀비의 시선은 끄는 듯했지만…….

“시스템 창의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라는 말만 있는 걸 보면……. 너랑 내가 부산역까지 가면 될 거 같은데.”

“……그래요.”

신재현의 말은 묘하게 느렸지만 박문대는 머리가 복잡해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가상현실 정도로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현실감이 강해서.

“그런데 후배님, 무서운 거 싫어하지 않았나.”

“누가 그래?”

“즐기진 않잖아요. 그런데 이런 내용도 잘 아네.”

박문대는 구시렁거리며 좌석에 머리를 기댔다. 내 취향과 별개로 이 정도로 흥한 콘텐츠면 찍먹은 해봐야지. 자컨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박문대의 말에 신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이윽고 기괴한 소리들이 흐르며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앞으로, 앞으로 몰려왔다. 마치 뒤가 아닌 앞에 있으면 좀비들과 멀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박문대와 신재현은 제일 앞자리에 조용히 앉아 사람들과 유리되어 있었다.

“기분 나빠요?”

“……어.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시도도 안 해보려니까 별로긴 해.”

유난히 솔직한 말에 신재현은 속으로 웃었다. 소리를 내면 박문대가 눈에 불을 켜며 악감정을 쌓을 게 뻔해서. 이 후배님에게 더 이상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터널에 들어서며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까 너, 아까 어떻게 오려고 했냐.”

“음……. 나도 영화 내용은 아니까요. 짐 올려놓는 곳으로 올라가서 포복했지.”

메댄이라는 놈이, 자기 관절 소중한지 모르고. 툴툴거리는 말에 신재현은 다시 한번 웃었다.

 

시끌거리더니 사람들이 열차 칸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쪽 칸에 있는 사람들이 문을 잠그고, 중간의 통로를 막았다. 이윽고 큰 비명이 울렸다. 신재현은 박문대의 손을 살며시 잡았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힘을 주어 꾹 잡았다. 박문대는 의아하다는 듯 신재현을 바라봤지만, 그의 손을 털어내지는 않았다.

이윽고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저건가. 7448.”

박문대와 신재현은 등장인물들이 마지막 결전을 벌이게 될 기관차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야기가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좀비들은 박문대와 신재현을 사람으로 인식해 달려들었지만, 피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희생은…… 싫어.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으면 좋잖아.”

“불가능한 소리를 하네, 후배님은.”

신재현은 몇 번째일지 모를 웃음을 지었다.

 

기관차가 부산에 들어섰다. 두 명의 생존자가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은 박문대와 신재현의 존재를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박문대는 혹여라도 시선을 끌까 봐 굽혀 앉은 다리의 모양을 바꾸며 끙 소리를 냈다.

“우리도 내릴 준비나 하자.”

“후배님, 시스템…… 문구가 뭐였지.”

“음?”

박문대는 의아한 눈으로 신재현을 바라보고는 자신의 시스템 창을 읽었다.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시오. 왜?”

하하, 작게 웃은 신재현이 박문대의 어깨를 짚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름을 벗어나지는 않되, 무사히 벗어나라니.”

“왜?”

“이 영화의 엔딩에서 생존자는 둘이에요. 이건 바꾸지 못하는 흐름이니 후배님은 부산에 들어서지 못해.”

신재현의 말에 박문대가 침음성을 삼켰다. 아니, 네 말이 맞긴 한데. 좀비로 오인당해서 사살당할 것도 같긴 한데. 그럼 애초에 벗어나라는 소리 따위 없지 않았겠냐. 뭔가 방법이 있겠지. 이렇게 답하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박문대는 당황해 신재현을 바라보려 들었지만 눈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 후배님은 엔딩 전에 이 열차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소리지. ……나는 한 사람을 이곳에서 내보낼 수 있어.”

야, 신재현!

“나는 처음에 물렸거든. 언제쯤 변하려나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는 잘 버텼고.”

야! 무슨 소리냐고!

“방금, 그 한 사람을 후배님으로 지정했어요. 잘 가요.”

신재현은 박문대에게 그 어떤 대답도 듣지 않고, 가볍게 몸을 놀려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박문대는 그의 이기적인 결정에 이를 악물었다.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 * *

 

박문대는 퉁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박차고 침대를 구르듯 내려가 옷을 걸쳐 입었다. 룸메이트가 오, 문대문대, 영화의 한 장면인 듯, 하고 놀리듯 말했지만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서둘러 숙소를 나오며 신재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웹에 검색했더니 브이틱은 존재하고 있었고, 신재현도 그러했다. 그러니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택시를 잡아 타면서 큰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큰달은 당황하며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신재현의 집 앞에 도착한 그는 벨을 눌렀다. 누르고, 눌렀지만 안에서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일전 신재현이 알려준 비번을 입력했더니 문이 은은한 음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앞까지 와 있던 콩이가 꼬리를 흔들며 두어 번 왕왕 소리를 내고는 서둘러 집 안쪽으로 향했다. 박문대 역시 신콩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신재현은 침실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잠자리는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여기저기서 쪽잠 자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하고 말했던 녀석이 암막커튼까지 치고, 이불을 둘둘 싸매고 옆으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박문대는 그의 곁에 앉았다. 손을 뻗어 이마의 온도를 쟀다. 뜨겁지는 않았다. 뺨도 만졌다. 보통 잘 때는 체온이 올라가지 않던가. 신재현의 뺨은 차가운 편이었다.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그의 코밑에 가져다 대자, 작은 숨결이 느껴졌다.

안도의 숨을 짧게 내쉰 박문대가 손을 신재현의 뺨에 얹었다. 그리고 약간의 감정을 담아 톡톡 두드렸다. 신재현은 자다가 방해받은 것이 싫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박문대는 끈질기게 신재현의 뺨을 다시 두드리고, 그의 입술도 건드렸다.

순간이었다.

“……!”

“야!”

신재현이 눈을 반짝, 뜨고는 박문대를 덮쳤다. 그리고 그의 목을 깨물었다. 피가 날 정도로 문 것은 아니었지만, 미약한 통증은 있었다. 박문대는 작은 신음성을 내며 양팔을 뻗어 신재현을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

“……후배님?”

박문대의 목을 깨문 채로 말하기 때문일까, 신재현의 음성은 뭉개져 있었다. 흐행임, 에 가까운 소리였다. 하지만 이 녀석이 할 말이라는 게…….

“내가, 너를…… 물었어?”

충격을 받은 듯한 음성에 박문대는 두 가지를 확신했다. 아까 그거, 꿈이 아니라 실제로 겪은 일이구나. 그리고 신재현도, 함께 겪었구나.

“어, 물었다.”

하, 웃은 신재현이 박문대를 덮친 자세 그대로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겨우, 보내줬는데.

“함께할, 수밖에…… 없겠네. 이제…… 후배님도, 나와…….”

같이 있어야 해. 박문대, 안 보내줘.

그리고는 다시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뭐라는 건지.”

박문대는 신재현의 잇자국이 남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붉혔다.

이래서는 화도 낼 수 없잖은가.

방금 깨달은 사실 때문에.

 

아, 좀비가 된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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