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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

눈앞에 드리워지는 총구에 얌전히 눈을 감았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저놈한테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다. 이윽고 방아쇠고 당겨지고, 탕- 총알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간다.

“다시.”

셀 수 없이 들은 목소리, 언제나와 같은 대사, 승리를 믿는 담담한 어조. 신재현은 이번에도 박문대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이 짓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걸까. 차르르, 시곗바늘이 과거의 발자취를 되짚는다. 찰칵. 나의 죽음은 시계 소리가 난다.

 

Edge of Tomorrow

박문대 X 청려

 

‘미믹’이라 명명된 외계종이 지구를 침략한 날은 여느 날들과 다름이 없었다. 전조 없이 시작된 침략에 인류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각국은 다급하게 대응책을 마련해 그들에게 맞섰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연이은 전투, 거듭되는 패배. 그러나 인류는 멸망이 코앞까지 닥친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에 잠기지 않는다. ‘청려’가 쏘아올린, 단 하나의 승전보만을 기억하며.

나라고 특별할 건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여기저기에 널린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살아있는 것에 안주하고, 무력하게 저항하며, 희망을 남에게, 특히 전장의 영웅 내지는 천사라 불리는 청려에게 의탁해버리고 마는, 그냥 그런 평범한…… 그러나 이변이 일어났고, 그 순간 세계의 사활이 내 손에 떨어졌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내가 직접 외계종을 말살해서 지구를 지켜내야 했다. 그건 오만이라기보다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변이 발생했던 건 웃기게도 내일이었다. 그때가 첫 출전이었는데,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기본적인 훈련만 마친 상태였다. 당연히 위험할 수밖에 없었지만 거부권은 내게 없었고 결과는 뭐,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한 가지, 예상을 빗나간 것이 있다면 바로 회귀였다. 내가 죽으면 날짜가 오늘로 뒤집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꿈인 줄로만 알았다. 내일이면 목숨을 걸고 미믹들과 싸워야 하니 긴장해서, 그런 불안감에서 나온 것일 뿐인 악몽. 그 꿈속에선 내가 타고 있던 수송선이 격추당해 폭발했는데, 최대한 빠르게 낙하를 택했지만 완전히 폭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처음부터 부상을 달고 전투를 시작하게 됐다. 나는 훈련한 대로 나름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이 많은 수의 적들을 다 죽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동료들은 빠르게 죽어나갔고 내 몸에도 상처가 빠르게 늘어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었다. 안 그래도 죽겠는데 돌연 처음 보는 커다란 개체가 나타났다. 돌연변이인지 상위 개체인지는 몰라도 크기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힘을 자랑했다. 절로 무력감이 샘솟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하나라도 더 데려가자는 생각에 지니고 있던 클레이모어를 꺼내들었다. 놈은 지척이었고, 덕분에 계산은 필요 없었다. 나는 자폭을 감행했다. 다행히 놈의 내구성은 비상식적이지 않았고, 난 그놈의 피를 가득히 덮어쓴 채 눈을 감았다. 미치도록 아팠지만 희열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출전 전날이었다. 익숙한 천장, 익숙한 침대, 살아있는 동료들과 이미 한 번 들어봤던 것 같은 TV 속 뉴스 멘트. 지독한 악몽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딱 그 정도로만 여기고 넘겼다. 하지만 일어나는 상황, 사람들의 행동, 일련의 대화… 그 모든 것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단순히 기우라고 치부하기에는 간밤의 꿈과 지나치게 똑같았다. 그러나 당장에 내가 뭔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애써 침묵했다. 그렇게 불안감만 한아름 품은 채로 다음날 수송선에 올랐고, 역시 격추당했으며 전투가 돌아가는 꼴까지 완벽하게 동일했다. 내가 마지막에 죽이고 간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덕분에 나는 첫 번째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고, 더 많은 적을 죽였다. 그리고 또 같은 TV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더 이상의 의심은 낭비였다.

세 번째 출전. 지난 일들이 실재임을 받아들이자 전투는 한결 수월해졌다. 수송선 격추, 추락, 이른 낙하. 이미 겪어본 일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수송선의 추락 지점에 멀뚱히 서있는 사람을 반경 바깥으로 빼내고, 같은 위치에서 나타나는 미믹들에 맞서고, 같은 방향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한다. 그러나 몸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완전히 따라주지 않았고 머지않아 한계에 봉착했다. 다시 맞는 죽음, 그리고 회귀.

네 번째에는 저편에서 눈에 익은 남자를 발견했다. 누군가 싶어 다가가는데 언뜻 그의 뒤에서 달려드는 미믹이 보였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이미 달려가 미믹을 잡아낸 상태였다. 공격은 고작해야 한두 차례 허용했는데 운 나쁘게도 신경 쪽을 뚫린 모양인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번 비틀거리다 시야가 기울더니 이내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아주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전투를 속행할 수 없을 것임은 분명했다. 다음을 생각하며 미믹을 기다리는데 남자가 주위 정리를 끝냈는지 다가와 나를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정체가 떠올랐다. 청려였다. 혹시 친분 있는 사람일까 싶었는데 그냥 워낙에 유명하니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청려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에 설마하니 이 전쟁통에서 부상자를 부축하려들까 싶었다. 그런데 부축은 무슨, 걱정이 무색해지게 청려는 내 몸을 뒤적거리더니 소모품만 쏙 빼가고서 그대로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지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라지만 아직 시체도 아니고 거기다 자길 구해준 사람인데 참 뭘 해준 보람도 없게 만드는 놈이었다. 저런 게 천사는 무슨. 저 새끼한테 그딴 별명을 지어준 게 누군지 몰라도 가서 따지고 싶었다. 의미 없는 열을 내다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날아든 미믹에게 목숨을 하나 내주었다.

다섯 번째에서는 괘씸함에 청려를 외면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의 행동이 나쁜 축에 드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다분히 미믹 척살을 위한 효율적인 선택지였다. 만약 내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그러지 않았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아마 나라고 별다를 것 없었겠지. 이해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역시 그럴 수 있지 하고 마냥 긍정적으로 포용해주기는 싫었다. 모순적이지만 일단 내가 당한 입장이다보니 머리론 알고 있어도 곧이곧대로 좋게 봐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감정을 차치한다 해도 내 몸이 하나인 만큼 내가 모두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나 한 번 인식하고나자 어디에 있어도 청려가 눈에 띄었다. 정신 차려보면 나도 모르게 문득 빛에 이끌리듯 시선을 주고 있을 정도로. 거슬렸다. 쓸데없이 눈에 밟힌다. 결국 나는 양심의 소리가 시키는 대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도달하는 것보다 미믹의 예정된 기습이 몇 발은 더 빨랐다. 젠장. 너무 오래 망설였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착잡함에 잠깐 고개를 숙였다 드는데 의외라면 의외인 전황이 눈에 들어왔다. 기습을 진즉 알아채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반사 신경이 그렇게나 빠른 건지 청려는 공격 한 번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반격하고 있었다. 긴장이 탁 풀렸다. 다행이었지만 좀 허탈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거에 괜히 끼어들었던 건가. 대충 안심하고 멈춰섰다. 다시 자리를 잡고 전투를 이어나가는데 도중 가까이서 폭발 소리가 일었다. 모두 기본적으로 클레이모어를 장비하고 있는 만큼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였지만 거리감이 싸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소음의 근원지에는 청려가 있었다. 그것도 전혀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나는 멍하니 다음을 생각했다. 어차피 영웅을 잃은 승전이라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6회차. 청려가 터뜨린 것인 줄 알았던 클레이모어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내가 쓰러진 일이 없게 되자 날 죽였던 미믹은 청려를 덮쳤고, 나와 달리 청려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챘다. 그래서 추정하기로는 누군가 그를 구하려 클레이모어를 날린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너무 가까이서 미믹과 충돌해 터지는 바람에 도리어 암살하는 꼴이 됐지만. 나는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헛짓하다가 같이 죽어버렸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바람에 그를 제대로 볼 수 없어 다행이었다.

7회차. 청려를 무력으로 피신시키기는 무리일 것을 알아 열심히 입을 털었다. 그러나 청려는 전투 위치를 옮겨야 한다는 조언과 그럴듯한 이유들의 나열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막막함에 실은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라고까지 내질러봤지만 당연히도 간파당해 경계만 높일 뿐이었다. 슬 예정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이대로면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게 뻔해 나는 결국 초조함을 못 이기고 미친 소리를 시작했다. 분대원이든 상관이든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진실. 그 어떤 방법으로 토로해도 결과는 같았다. 다신 입에 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내 입은 또 아무런 말이나 내뱉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차마, 직접적으로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고 하지는 못하고 그를 암시하는 말들만을 열거했다. 미믹이 습격하는 위치, 형태, 시간, 날아올 폭발물의 존재와 추정 사유, 적어도 이번에는 원인을 제거할 수 없는 이유. 스스로가 보기에도 어떤 망상에 사로잡혀 헛소리만 생각 없이 마구 내뱉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청려는 경청했다. 그는 물끄러미 날 보기만 하더니 대뜸 의미 모를 물음을 던졌다.

“몇 번째에요?”

“예?”

“몇 번이나 되돌렸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이해할 수 없을 반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가 내 말을 똑바로 알아들었단 거다. 순간 설득과는 다른 쪽에서의 희망을 엿보았다. 숨을 삼켰다.

“…일곱 번째입니다.”

“그래요?”

“네, 이해하셨다면 빨리-”

철컥. 청려의 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싸해지는 감각이 슬며시 피어오른다. 뭐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침이 힘겹게 목구멍을 넘어간다. 놈이 맑은 웃음을 지었다.

“돌아가면 날 찾아와요.”

일순간에 겨눠지는 총구, 때마침 들려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 총성, 폭발음, 쓰러지는 청려와 입가에 맺힌 진한 웃음, 언뜻 보인 환희, 이내 진득한 점액에 점령당한 시야. 온갖 소리와 형상이 뒤섞인다. 아, X발. 미친 소릴 바로 받아들이는 걸 그냥 넘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친 소릴 이해하는 건 미친놈뿐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잠시 잊었다.

“……,”

여덟 번째. 아침 뉴스 소리에 잠을 깨면 다시 오늘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다시 자고 싶기도 했다. 이젠 내가 돌아오는 게 자는 도중으로 돌아오는 건지 잠에서 깰 때를 기준으로 돌아오는 건지도 의문이 든다. 영 피로가 지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마 기분 탓이긴 할 거다.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 멀쩡히 움직일 수도 없었을 테니 어찌 보면 불행 중 다행이지. 그러나 한숨은 끝내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래도 어쩌겠나. 해야지. 포기한다 해도 다시 돌아올 뿐이고 죽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고통을 못 느끼게 되지도 않는다. 지친 마음을 다잡고 평소처럼 이전 회차를 복기했다.

같은 상황의 반복, 그 속에 피어올랐던 변수. 그와의 모든 만남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역시 만나야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뇌리에 박혀 떠나가질 않는 탓이다. 도저히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그의 반응은 분명 어떠한 희망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어떤 방향으로든 이 사태를 해결해 줄 열쇠가 될 것이다. 어쩐지 청려를 맞닥뜨린 순간부터 행선지가 고정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후 잡혀있는 일정을 무시하고 몰래 빠져나와 청려를 찾아다녔다. 그가 있을 곳은 공공연히 알려진 정보였기에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신재현.”

“…음,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청려가 빙글 웃어보였다. 그 미소는 어떠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나도 뱉어놓고 순간 아차 했지만 수습하자니 꼭 저놈의 손에 놀아나는 것 같아 뻔뻔하게 맞받아치기로 했다. 그리고 뭐, 굳이 따지고 보면 초면이라기도 애매하지 않나? 내가 저놈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솔직히 반말이 튀어나올 법하기도 했다. 속으로 좀… 곱씹기도 했고. 그러니 설령 불쾌하더라도 별 수 없지. 요구하면 그때 고쳐주자는 생각으로 답을 주었다.

“그래, 네가 ‘내일’ 찾아오라며.”

일순 청려의 동공이 확 커지며 만면에 화색을 띄웠다.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확실히 반기는 듯한 기색이었다. 누가 봐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바뀐 분위기. 이전 회차에서처럼 작은 함의를 곧바로 눈치채 웃을 것이라곤 생각했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당황에 잠시 얼타는 사이 청려가 내 손을 이끌었다.

“따라와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가니 종착지는 비밀스런 구석진 공간이었다.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쓸데없이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겠다 싶을 정도로 조금 먼 거리였다. 내부는 딱 전형적인 연구실처럼 보였고, 이런 장소와 맞물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연구원인 듯한 남자도 한 명 있었다. 청려는 날 출입구 쪽에 세워두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속삭였다. 워낙 소리가 작아 대화를 엿들을 순 없었지만 남자의 제스처를 보니 내 얘기를 한 것 같았다. 그는 뭔가를 깨달은 얼굴을 하고 날 훑어보다 이내 작게 감탄하는데, 그게 못내 기분이 나빴다. 뭐랄까, 부정적이거나 평가적인 눈길은 아니지만 마치 신기한 자원을 발견한 듯한? 묘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제 행동을 알아챘는지 남자가 반짝거리던 시선을 집어치우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주단입니다. 혹시 성함이…?”

“아, 박문대입니다.”

내밀어진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던 청려가 나서 주단을 소개했다.

“문대 씨의 말을 믿어줄 사람이에요. 지금부터 문대 씨에게 여러 설명을 해줄 사람이기도 하고. 음, 우선 가장 궁금할 것부터 말해주자면 나도 리셋을 겪었어요.”

정황을 봤을 때 회귀에 관한 설명인가 싶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아는 사람이 있기는 했구나. 게다가 경험자라니. 선례의 존재에 옅은 안도감이 들었다. 막막하기만 했던 괴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주단은 미믹을 연구하는 연구원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모종의 사유로 배척당해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그래서 이렇게 숨어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렴풋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 회귀는 미믹과 관련이 있었다. 청려와 주단은 임의로 미믹을 세 종류로 나눴는데 알파, 오메가, 일반종으로 명명했다. 익히 보던 것들이 일반종이고, 첫 번째로 죽었을 때 딱 한 번 보았던 유독 커다란 개체가 알파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오메가라는 개체는 미믹들의 본체라고 한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뇌 같은 것이라 오메가만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날 거란, 조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며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했다. 가장 핵심은 오메가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알파가 죽으면 그 알파가 겪은 일들이 오메가에게 전송되고, 그러면 오메가는 하루를 되돌려 전략을 변경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상하리만치 패전을 반복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알파의 죽음은 강제 리셋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청려는 내가 처음 죽었을 때 알파의 체액을 통해 능력을 흡수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죽은 알파를 대체하게 된 거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오메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돌아간 거였다. 반대로 내가 죽기 전에 시간을 돌릴 경우에는 정보를 받지 못한 채이기 때문에 인간 측이 정보 우위에 서게 되므로, 그리고 그건 자신들이 누려오던 이점이자 연이은 승리의 비결이므로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었다.

들으면서 가장 뇌리에 박힌 건 다름 아닌 자살 권유였다. 청려는 리셋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내 귀엔 죽으란 말과 딱히 다르게 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전투 숙련도가 낮아서 훈련이 필요한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무조건 죽음을 반복해야 할 거란다. 가벼운 부상에도 단지 효율을 위해. 실전에서는 특히 유의해야 하는데, 알파의 체액이 기존 혈액과 섞여 있는 상태라서 까딱하다 과다출혈로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을 거란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다른 피까지 섞이면 능력이 중화되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수혈도 피해야 했다. 영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특별한 수도 없어 납득했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기도 하고 멸망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버리면 단순히 싫다고 외면할 수도 없지 않나. 더군다나 이미 몸소 시도해 본 사람을 앞에 두고.

“여기까지가 상황에 대한 설명. 작전은 천천히 설명해줄게요. 이해 안 되는 게 있나요?”

“아니.”

고개를 저었다. 그 후론 일사천리였다. 청려의 감독 아래 시작한 훈련의 강도는 그동안 받아온 것과 궤를 달리했고 무수한 부상과 죽음을 낳았다. 한계에 정확하게 맞춰 최대한 굴리다가 시간이 되거나 방심해서 다치면 리셋. 그의 방식은 명료했고 간단했지만 효과적이긴 했다. 특히 전쟁영웅에게 받는 지도는 잠깐이나마 어떤 경지에 올라보이게끔 만들었다. 별개로 원망을 품지 않을 수는 없었다. 최적의 상태에서 틀어지면 그는 어김없이 총을 치켜들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기억이 유지되지 않을 텐데도 참 한결같았다. 신재현은 제 일련의 행동을 살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고통과 억울함을 느꼈고 울분에 가득 차기도 했지만 끝내 익숙해져버렸다. 늘 아팠지만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 달고 있는 게 되었고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 때면 어떻게든 신재현이 빛을 비췄다. 지금이 몇 번째인지 가물해졌을 땐 카운트하는 걸 그만두었다. 이제 오늘은 그냥 오늘이었다.

훈련 성과를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거둔 후부터는 실전을 포함시켰다. 한참 훈련하다 다음날의 기존 임무 투입까지. 시간이 돌아가는 횟수만큼 착실하게 전투에 익숙해져갔다. 그럴수록 리셋하는 시간도 덩달아 점점 늦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이틀의 시간을 거의 다 채워 살아남았을 수 있게 되었고 그다음 회차, 신재현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곤 정말 오랜만에 주단을 만났다. 전에 들었던 작전을 논의할 타이밍이 되었다. 이 이상은 시간을 끈다 해도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으리라.

작전은 언어 상 간단했다. 주단의 발명품을 이용해 오메가의 위치를 알아낸 뒤 격파할 것. 그러나 자세히 파고 들어가보면 마냥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주단의 발명품은 알파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오메가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으로, 알파와 오메가가 신경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즉, 오메가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알파가 필요했다. 그래서 실전 훈련에 돌입하면서부터 일차적으로 목표로 둔 것은 알파의 생포였다. 그러나 알파의 개체 수부터 워낙 적어 찾았다는 소식이 하루 만에 들려올 리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죽을 때마다 그날의 정보를 받아가는 오메가가 알파를 이쪽으로 보내줄 리도 없었다. 설령 발견한다 해도 사살이라면 모를까, 산 채로 제압한다는 어려운 난이도가 해당 목표를 가로막았다. 사실 시도는 열심히 해보았으나 처음부터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신재현에게 신호를 준 것이 이 방법의 대체안이었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신호는 온전히 내 몫이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미뤄왔던 최후의 방법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신재현이 작전을 바로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내가 망가질 것 같았단다.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확실히 처음부터 기억을 이용한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했으면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남은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주단의 발명품을 알파로 인식되는 내게 꽂는 것. 하지만 난 100% 알파가 아니라 그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날 미믹이라 치부하기엔 어폐가 커서, 그냥 내 몸이 알파의 에너지를 가두고 있는 것뿐이라, 주단의 발명품이 내 체내의 알파 에너지를 흡수하고 나면 아마 리셋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될 거란 이야기였다. 그래서 즉시 사용하지 않고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었다.

만약 신재현도 리셋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유일한 승전보를 울렸던 그 전투에서 능력을 잃었고, 그 직후에 주단이 발명품을 완성해냈다. 그런 어긋난 타이밍 때문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단다. 그리하여 마지막 회차, 우리는 오메가의 위치를 알아내었고, 그 대가로 리셋을 잃었다. 목표 지점은 아예 다른 나라로 찍혔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이동수단이 필연적이었다. 그건 내가 해결할게요.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신재현은 제 말대로 비행체를 지원받아왔다. 오메가의 위치는 어떤 지하건물이었는데 그 주위는 미믹들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적진 한복판이라 아주 근접해서 내릴 수는 없었고, 그저 가능한 가까이 내려서 도보로 이동하는 수밖엔 없었다.

전투인원은 나와 신재현, 오직 둘이었다. 마음 같아선 더 끌고 오고 싶었지만 몇 명이면 모를까, 단시간에 대대적으로 동원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거기다 그럼 가능한 몇 명만 데려오자니 어설프면 소수는 언제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짐에 불과하단다. 그런 판단이 듣고보면 또 맞는 말이라 나 또한 동의했었다. 덕분에 우리는 각종 부상을 달게 됐지만 각고의 전투 끝에 어떻게든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건물 안에는 오히려 미믹이 적었기에 빠르게 전투를 마치고 잠깐 점검 시간을 가졌다. 장비를 끝내고 이동하기 전 부상의 정도를 살펴보니, 나는 그래도 자잘한 경상의 형태였는데 신재현은 중상에 빠져있었다. 멀쩡한 사람처럼 잘 싸우길래 별것 아닌 줄로만 알았는데 꽤 심각했다. 걱정되는 한편, 새삼 신재현이라는 인간에 질려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겠냐 물으니 지금까지 모를 정도지 않았냐며 샐쭉 웃기만 해서 더 그랬다. 하는 수없이 응급처치만 대충 하고 마저 이동했다.

지하건물의 최하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알파 하나가 배회하고 있었다. 오메가는 저 안에 있을 것이 분명한데, 저걸 죽이면 이날은 기억 없이 리셋되어 패배가 확정되고 말 것이다. 알파에게 손대지 않고 진입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제압, 혹은 유인. 전자는 우리 상태가 허락치 않을 게 뻔했고 후자는 유인하는 쪽의 죽음이 기정사실화된다. 두 선택지의 기로에 서서 머리를 앓고 있는데 신재현이 대뜸 유인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할게요.”

“…기다려봐, 더 좋은 수가 있을-”

“문대 씨.”

난 어차피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잖아요. 설득하듯 조곤조곤 덧붙이는 말에 그게 문제인 거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말린다고 말려지는 유의 것이 아니었다. 한때 무수히 죽음에 뛰어들었을 이를 또 한 번 죽음으로 내모는 짓을 하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신재현은 내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절로 꽉 물리는 입술에 피가 맺혔다.

“더 일찍, 평화로웠을 때 널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신재현이 중얼거렸다.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없이 노려만 보니, 그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꼭 성공해요. 할 수 있는 거 알아요.”

“그래.”

간신히 답을 내뱉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흘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서로의 입술을 포개고 눈을 맞췄다. 몇 초가 지나고 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의도한 듯 소리가 선명했다. 불나방은 그렇게 날아갔다. 그가 벌어다 준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온기가 떠나간 입술이 시렸다.

오메가는 물이 가득 찬 깊은 공동 안에 잠겨 있었다. 물속이라 총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였고, 둔기로 내려친대도 웬만해선 힘이 실리지 않을 것이다. 날붙이 따위에 타격을 입을지는 한 번 시도해봐야겠고 클레이모어는 무겁지 않아 물 밖에서 던지면 수면 위로 떠오를 것 같았다. 별 수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어릴 적 수영을 배웠던지라 이동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오메가는 거대한 덩어리처럼 생겼는데 정말 그냥 코어 같은 개념의 존재인지 공격 능력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에 주의하며 칼을 치켜들었다. 탁. 칼은 역시 눈에 띄는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결국엔 또 선택지는 하나가 됐다. 품에서 개조된 클레이모어를 꺼냈다. 알파조차 한 방에 보내버렸던 것처럼 유난히 미믹들에게 잘 먹히는 무기였다. 혹시 싶어 안정성을 포기하고 위력을 극대화하는 개조까지 마친 물건이었다. 부디 이게 오메가에게도 잘 먹히길 바랄 뿐이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신을 찾으며 알고 있는 모든 기도문을 외웠다.

스위치는 당겨졌다. 이 거리에서는 급하게 뒤로 빠져봤자 폭발로부터 무사하긴 무리였다. 어떻게 살아남는다 해도 부상을 입은 채로는 도움 없이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에 익사에서까지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점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다. 결과라도 확인하고 갈 수 있으면 하는 일에나 희망을 걸어보며 눈을 부릅떴다. 물먹은 소리가 터지고 시야가 파편처럼 튀어 찬란하게 빛났다. 틈새 사이로 익숙한 색의 점액이 일렁인다. 그건 기름처럼 물과 섞이지 않고 떠올랐다. 그러다 내 몸에 닿고 이내 집어삼킨다. 시야는 흐릿해져 가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 신경은 왜 이렇게 명줄이 긴지 점액에 전신이 녹아내리고 뚫리는 감각이 생생했다. 이성은 죽음을 외치는데 직감은 부정한다. 되감기는 기억은 한 사람을 반복해서 영사했다. 같은 날짜, 같은 장소, 같은 상황, 그러나 다른 언행들. 마치 기억을 공유라도 하는 것처럼 이전 회차에서 끊겼던 대화를 얼추 자연스럽게 맞춰 이어나가주고, 그렇게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는. 다시 그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런데 네 바람대로 평화롭다면, 그러면 너는 내게 또 어떤- 생각이 뚝뚝 끊겼다. 세상이 뒤틀린다. 뭐랄까, 그 광경을 묘사하기에는…… 시간의 재배치는 영 살아서 볼 게 아니었다. 방심하면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

 

원인 불명의, 감지, 추정 시각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짓눌리는 감각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그러나 드문드문 들려온 것들이 여느 때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났다. 퍼뜩 든 정신을 부여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더없이 익숙한 장소였다. 셀 수 없이 돌아왔던 세이브포인트.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틀어놓은 뉴스는 평소와 전혀 다른 대본을 읽고 있었다. 서둘러 살펴보니 대규모의 에너지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장소는 바로 직전까지 내가 있던 곳. 돌연 희미했던 이전 회차의 기억들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아무래도 오메가의 일부가 나한테 흡수된 모양이다. 그래서 시간을 돌리면서 부활에 실패하고 융합되지 못한 잔재가 터진 것 같았다. 즉, 진짜 죽었다는 거다. 완전한 소멸. 아무도 모르겠지만 인간이 두 번째로 거둬낸 승리. 나는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늘 같았다. 사실 이제는 그가 필요치 않음에도.

“신재현!”

그의 육체는 멀끔히도 수복되어 있었다. 더 이상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날은 이제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게 기뻐 당장이라도 종전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말을 골랐다. 지금의 신재현은 날 몰랐다. 이번 역시 전과 동일해질 수는 영영 없겠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수없이 맞닥뜨린 너의 망각. 그에 이변은 없었지만 너는 또 말도 안 되는 것에서 단서를 찾아날 테니까.

“…음,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한결같은 첫마디에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어. 소식 들었지? ‘오메가’ 죽은 거.”

무수한 죽음을 바쳐 달성한 위업. 그가 짐작하고 있었을 것을 사실이라 말하니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던 눈에 안광이 돌았다. 반짝이는 그 특유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소.

“안내해봐요.”

주단에게로. 생략된 말이, 품고 있는 함의가, 전부 또렷이 들려왔다. 이게 해피엔딩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처음으로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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