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별들의 노래
신재현이 아무리 유능한 재원이라고 하더라도 직장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 고단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물론 그가 퇴근 후의 여가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편인 것은 또 아니었고, 귀가 후에도 서류 더미를 뒤적이거나 자신을 갈고 닦기 위한 일정을 기계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신재현이 거주하는 깨끗하고 널찍한 레지던스는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브랜드의 매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신재현은 지하철을, 그러니까 곳곳에 오물이 떨어져 있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타는 뉴욕의 지하철을 타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다리로 직접 거리를 걸어 통근하는 것을 선택했다. 걸어갈 만한 거리에 맨해튼 시내의 교통 체증을 겪는 건 영 반갑지 않았거든. 물론 거리가 지하철보다 깨끗하냐고 한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출근길에 즐겨 가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가고,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보고 들어간다는 루틴에 만족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은 퇴근길이었다. 잊을 만하면 맥주를 마시러 가자는 동료를 정말 가고 싶지만 일정이 있어서 아쉽다는 표정으로 거절하고 돌아서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 전에 한 번 그를 따라 그렇게 좋다는 재즈바에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취향과 먼 음악과 취객들의 소음이 자아내는 지독한 불협화음 덕에 몹시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의 앞에선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라고 해줬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거리에서 고요함을 느끼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신 유행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사정없이 클랙슨을 울려대는 자동차들과 긴급상황을 알리는 사이렌까지. 신재현은 그것이 여전히 달갑지는 않아도 익숙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이 도시에서 살아왔다. 그저 덤덤하게,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무심한 얼굴로 애비뉴를 걷던 신재현의 귓속으로 익숙한 소음을 뚫고 찰진 목소리 하나가 파고들어 왔다. 모국의 언어였다.
“아, 씨발.”
신재현이 문득 고개를 들고 그 발신원을 찾으니 격자무늬 거리의 틈새에 파고든 작은 가게 하나로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뛰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급한 것인지 미처 살피지 못한 바람에 등에 둘러맨 악기의 케이스가 입구에 걸려 퍽 하는 소리가 났고, 다시 한번 ‘씨발’이 들려왔다. 신재현의 고개가 살짝 한쪽으로 기울었다. 평소에 발을 들여본 적 없는 스트리트의 작은 펍. 문밖에서부터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잠시 발걸음이 멈췄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지극히 박애적인 사고 과정의 끝에 그는 천천히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오. 욕설을 내뱉으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간 남자는 통기타를 들고 펍의 한쪽에 마련된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무대 위에 선 것인지 싸구려 마이크를 통해 가다듬어지지 않은 숨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었고 이마 위를 줄줄 흐르는 땀은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다. 신재현은 그 무대가 잘 보이는 바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마시지도 않을 병맥주를 하나 주문했다. 올드팝 같은 걸 부르려나. 따로 밴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재현은 적당히 머릿속으로 기타 솔로로 부를 만한 오래된 팝송 몇 곡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기타의 울림과 함께 들려오는 깨끗한 목소리는 그의 예상과 달리 어렸을 때 한두 번 들어본 것 같은 한국 포크 곡의 가사를 또박또박 읽어냈다. 뉴욕 한복판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선곡과 그 노래들을 소화해내는 표현력과 감성에 신재현은 한참동안 귀를 기울였다. 비록 그 작은 펍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노래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
길지 않은 공연이 끝나고 가게 안에 드문드문 박수가 울려 퍼졌다. 신재현이 바텐더 손에 팁을 쥐여주고 부탁하자 그는 실실 웃으며 겨우 물을 마실 짬을 얻은 오늘의 가수의 팔을 끌어 신재현에게 데려왔다. 뭐 하는 거냐며 짜증을 내던 남자는 엉겁결에 신재현이 뻗은 손을 마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눈을 접어 웃고 있는 잘생긴 남자의 배경을 짧게 추측해보았지만, 다양성이 차고 넘치는 이 도시에서 섣불리 그 추측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Umm... Excuse me?”
“아. 나 한국인이에요. 한국어로 해도 괜찮아요.”
호의라고 할지라도 기껏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한국어로 돌려받는 것은 겪을 때마다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민망함에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한거냐고 속으로 투덜거렸는데 조금 전까지 자신이 한국어로 실컷 노래하고 난 후라는 것을 깨달으니 두배로 민망했다. 까닭도 모르고 불려왔지만 노래하는 거 잘 들었다며 마실 것을 고르라고 권해주는 동향의 남성을 굳이 경계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박문대라고 합니다.”
“신재현입니다.”
가볍게 통성명하고 마른 목에 맥주가 들어가니 박문대는 금방 기분이 올라왔다. 그가 뉴욕에 온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로서는 한국어로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반가웠거든.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하마터면 구구절절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을 뻔했다. 신재현은 신재현대로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조금 들뜬 기분이 되었다. 조그마한 질문 하나만 던져도 혼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가 또 금방 피식 웃음을 흘리는 박문대의 표정 변화를 보는 것은 제법 재미있었다. 아직 익숙지 않은 뉴욕 생활의 애환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처음 미국 땅을 밟게 된 아주 어린 날 자신의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기특하네요 하고 칭찬했더니 무슨 개 칭찬하는 것처럼 말하십니까라고 하면서도 가상의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기뻐하는 게 그대로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좀 더 얘기해도 좋을 것 같은데 하고 그런 아쉬움이 남을 무렵 부엌에서 잔뜩 화난 얼굴의 남자가 걸어 나와 박문대를 향해 빨리 네 일을 하라며 윽박질렀다. 박문대는 신경질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하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설거지 더미로 돌아가려 했다. 한참 재밌었는데, 좀 더 마실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가보겠다고 꾸벅 인사를 하자 신재현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재밌었다며 가보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쌓인 그릇에 수돗물을 쏟아부으며 박문대는 떠올렸다.
‘아, 연락처 받아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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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번 더 펍에 출근할 때까지 박문대는 무심코 그 훤칠한 한국인이 다시 가게를 들리진 않을까 매장의 출입구를 기웃대곤 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그래, 어차피 그냥 한 번 들린 손님인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박문대의 생활은 깊은 고민 따위를 할 여유 없이 빼곡하게 바빴다. 지난번 무대에 오른 것도 사장과 시시한 딜을 해서 겨우 얻어낸 자리였고 원래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설거지 및 잡무. 그런 비슷한 아르바이트를 몇 가지 하면서 어떻게든 방세를 내고 생활과 비슷한 것을 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기는 한다는 의미의 생활. 버스킹 또한 그것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엔 길거리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노래했다.
사람들 많이 다닐 법한 거리면 모를까 그가 주로 공연하는 작은 공원 앞 같은 경우 그렇게 벌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 한 번 브로드웨이 근처로 가봤다가 자기 자리였다고 시비를 걸어오는 험악한 인상의 외국인(물론 이곳에선 박문대가 외국인이다)들과 맞닥뜨린 이후로는 유동인구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가르침만 얻게 되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의 배경으로 음악이 깔릴 때와는 달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해선 조금 다른 선곡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도 익숙한 곡. 적당히 기교를 섞어 귀를 잡아 끌 곡을 열창을 하다 보면... 스치는 행인의 모습 가운데 본 적 있는 옆얼굴이 있었다. 박문대가 우뚝 기타를 치던 손을 멈추자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래를 듣고 있던 몇 명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주 잠깐의 사이에 뛰어가 아는 척을 할까 수십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한 번 보고 이야기 나눴다는 것을 이유로 아는 척하는 것은 오버하는 건가 싶어서 그만뒀다. 그 대신에 매번 자리를 바꿔 버스킹을 하던 박문대는 조금 더 많이, 아니 자주 이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다행히도 신재현의 귀가 시간은 매우 규칙적이었고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할 즈음엔 꼭 그 서늘한 인상의 남자가 지나갔다. 그것을 보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한 번쯤은 매일같이 그 자리에서 노래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고 말을 걸어줄 법도 한다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툭. 투툭.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늘은 아직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는데. 그렇지만 기타는 박문대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얼마 되지 않는 고가의 자산이었다. 비에 젖게 할 순 없었다. 케이스에 쌓인 동전들과 몇 장의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기타를 넣었다. 서둘러서 천막 아래로 피했지만 젖어버린 머리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공쳤네. 내리는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빗줄기가 얇아지다가 그쳤다. 몸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하려는데.
“아.”
박문대는 그대로 누군가의 어깨에 자기 몸을 세게 갖다 박았다. 남자는, 그러니까 신재현은 놀란 눈으로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혹여 쏟아지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박문대의 시선 또한 그를 따라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신재현의 손에는 커피 두 잔이 종이 캐리어에 담겨 들려 있었다. 신재현이 저 앞에 있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던 박문대는 너는... 하고 말끝을 흐렸더니 신재현은 이제 몇 번 봤다고 바로 반말인 건가? 그래요, 뭐. 여긴 미국 아니냐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제가 여기 있는 걸 아셨습니까?”
“음? 매일 여기 있지 않았나?”
신재현은 캐리어에서 꺼낸 커피를 건넸다. 비로 인해 식어버린 몸이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고 여태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은 그에 대한 얄팍한 원망도 눈이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공원의 천막 아래 멀뚱히 서서 대화를 이어갈 만한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던 박문대는 불쑥 조금 걸을까...? 요라고 말을 꺼냈고 신재현은 그래요라고 답했다.
미리 말하자면 이날 박문대와 신재현은 어퍼맨해튼에서 로어맨해튼까지 맨해튼을 세로질러 절반이 넘는 거리를 걸었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고 다가올 할로윈을 위해 일찌감치 거대한 호박 장식 설치를 준비하는 그 앞을 지나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타임스퀘어를 지난 때 즈음 영화 속 캐릭터의 분장을 한 사람에게 팁을 뜯길 뻔한 박문대를 보고 신재현은 한참을 웃었다. 박문대가 가보고 싶어 하고, 신재현이 가보고 별로라고 생각했던 재즈바를 지날 즈음에 좋아하는 음악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걸로 음악이라도 들으실래요?”
박문대는 기타 케이스의 앞주머니에서 두 개의 이어폰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듀얼 잭을 꺼내 내밀었다. 신재현은 아직도 무선 이어폰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니 놀란 척을 하면서 자신의 이어폰을 꺼내 한쪽에 끼웠다. 박문대는 투덜거리면서도 손을 움직여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찾았다. 얕게 깔린 물웅덩이 위로 전광판의 빛들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어떤 곡은 감미로웠고, 또 어떤 곡은 템포가 아주 빨라 가사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신재현 선곡에 굳이 평가를 덧붙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도시의 소음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이런 가사, 이런 음악을 즐겨 듣는 남자의 삶의 윤곽을 따라 그렸다. 고개를 돌리면 심각한 표정을 하고 다음 곡을 고르는 옆자리의 박문대가 보였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맨해튼의 끝자락, 허드슨강을 마주한 박문대와 신재현은 배터리 파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발치에서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힙합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 놓고 무언가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점점 더 개인적인 곳까지 닿아갔다.
“그래서요?”
“출근했더니 회사가 그새 망해서 사무실도 텅 비어 있더라고?”
박문대는 해외 취업이라는 큰 꿈을 실현하겠다 뉴욕의 한인기업에 취직했는데 세 번째 출근 즈음에 회사가 망해서 사장이 야반도주한 사연을 풀었다. 소식을 들은 한국의 친구들은 어서 귀국하라고 종용했지만, 이왕 비자도 있고 워크퍼밋도 받은 이상, 주어진 기간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뉴욕에 남을 것을 결심한 것까지. 그거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 라며 고개를 갸웃대는 신재현을 보고 박문대는 할 말이 없어서 합법은 아닐 걸 정도로 답을 했다. 적어도 신재현이 불법체류자로 신고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이민을 와서 그런 걱정 따위 해봤을 리 없을 신재현의 이야기에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임원 진출도 어렵지 않아 보이는 럭셔리 브랜드 관리자라는 설명이 말 그대로 찰떡같이 어울려 보였지만 막상 신재현은 자기 꿈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꿈이 뭐길래?”
“아, 나 아이돌 하고 싶었어요.”
“...아이돌?”
박문대는 노골적인 시선으로 신재현의 얼굴부터 발끝까지를 주욱 훑었다. 될 거 같은데. 그 결과로 던진 짧은 말에 신재현은 이제 나이가 많아서라며 하하 소리를 내 웃었다. 박문대는 진심으로 저 얼굴, 저 몸이면 진짜 어디 다른 평행세계 같은 데선 전 세계 씹어먹는 1군 아이돌이었을 텐데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거 좀 빌려줄래요?”
“응?”
신재현은 손을 들어 박문대가 옆에 내려놓은 기타 케이스를 가리켰다. 박문대에게서 기타를 건네 받고 자기 몸에 건 신재현은 몇 번 스트링을 튕기며 튜닝 상태를 확인했다. 기타 칠 줄 알았나보네라는 박문대의 감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타 연주와 함께 조용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Please don’t see just a boy caught up in dreams and fantasies.
Please see me reaching out for someone I can’t see…
박문대는 피식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팔다리를 쭈욱 뻗고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를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노래를 들으러 온 지친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멜로디와 가사는 어쩐지 하나도 낯설지 않았고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져 박문대는 남에게 쉽게 내보인 적 없는 깊은 곳을 강하게 찔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신재현은 고개를 돌려 박문대의 눈을 마주한 채 곡을 마쳤다. 질문으로 끝나는 마지막 가사는 마치 박문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이 들려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두서없는 대답을 뱉을 뻔했다.
“...자작곡... 인 건가?”
“맞아요. 예전에 잠깐 짬이 나서...별론가?”
“아니? 좋아서. 진짜로.”
아이돌의 곡이라기에는 노랫말이 시처럼 들렸고 잘 부르는 노래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긋난 음들이 고스란히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박문대는 말할 수 있었다. 좋은 곡이었고 계속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맘에 들면 가져요. 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게요.”
“크리스마스 한참 멀었는데.”
싱긋 웃는 신재현의 머리카락이 이제 막 싸늘해지기 시작한 가을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야경은 아름다웠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신재현은 박문대에게 자기 집에 오겠냐고 물었고 박문대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좁고 곰팡이 핀 자신의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다만 하룻밤의 뜨거운 로맨스 같은 것은 없었고 박문대는 조금 긴 신재현의 파자마를 얻어 입고 깨끗한 방에서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날마다 조금씩 박문대의 짐이 신재현의 스튜디오로 옮겨갔고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아 시간이 남는 날에는 몇 가지 재료를 사다 한식 밥상을 차려 보기도 했다. 신재현은 오랜만에 먹네요. 정도로 밖에 별말이 없었지만, 평소 깨작대며 과일이나 먹던 모습을 보다가 밥공기를 싹 비우는 걸 보니 박문대는 속이 다 시원했다. 박문대가 자러 갈 때쯤 신재현의 방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는데 어느 날 살짝 열린 문틈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박문대는 크게 망설이지 않고 그 문을 넘어갔다. 한번 몸을 섞기 시작하니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았고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은 제법 연인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박문대는 신재현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버스킹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말과 함께 유명 뮤지션들이 소속된 회사의 명함을 받았다. 사실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눴다. 정식으로 데뷔하자고 비자 문제도 싹 해결해주겠다고. 박문대는 자신의 뮤지션이라는 진짜 꿈에 한발 다가가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이제는 정말 제집처럼 그에게 받은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박문대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그의 예상과 한참 달랐다. 신재현은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굳은 얼굴로 커다란 TV에 떠 있는 어떤 위튜브 영상의 정지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박문대가 버스킹을 하는 영상이었다. 아마도 박문대에게 명함을 건넨 관계자가 보고 크게 마음에 들어 했던 그 영상. 신재현은 손끝을 살짝 움직여 영상을 재생시켰다. 박문대의 깨끗하고 힘 있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배터리 파크에서 신재현이 박문대에게 불러줬던 그 노래였다.
[뉴욕의 길거리! 놀라운 동양의 싱어송라이터]
“...아 이건...”
저런 게 찍혔다고? 하고 놀란 박문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같은 제목의 위튜브 영상을 찾았다. 동영상의 조회수는 이미 몇십만을 넘어 있었고 댓글엔 이 아름다운 노래를 멋지게 불러낸 박문대를 칭찬하는 말들이 가득했다. 카메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이 곡을 당신이 만든 것이냐는 관중의 질문에 무심코 sure라고 대답하는 모습까지 남아있었고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이 곡의 원작자인 신재현의 존재는 언급되지 않았다. 신재현의 공허한 시선과 침묵 앞에서 박문대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정적의 대치 상황을 깬 것은 신재현 쪽이었다.
“괜찮아요. 내가 선물로 준댔잖아.”
“아니 이건 내가... 정식 데뷔하면 크레딧 꼭 넣어서...”
정식 데뷔라는 단어와 함께 신재현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자신이 내려놓은 꿈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래. 나 얘기가 잘 풀려서 곧 정식으로 데뷔하게 됐다. 기뻐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뻐요. 역시 노래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나와는 다르게. 고저 없는 목소리.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아, 나도 말할 게 있는데. 파리 본사로 가게 됐어요. 아마 오랫동안 안 돌아올 거고.”
“뭐...?”
“이 집은 그냥 써도 돼요.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야겠어.”
박문대는 자신의 방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곧 방의 문이 닫혔다. 박문대는 그날 밤 자신의 방에서 혼자 울었고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한 채 신재현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공항까지 데려다주면 안 되느냐는 박문대의 말을 피곤할 텐데 괜찮다는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말로 거절하고 두사람은 이별했다. I love you라는 진심을 그가 떠나가는 길에 수놓아 줄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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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또 한 해가 넘어갔고 박문대는 데뷔했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은 미미했던 박문대는 김래빈이라는 실력 있는 신예 프로듀서를 만나 하나의 팀처럼 일했다. 제법 좋은 곡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박문대의 최고 히트곡을 뽑으라면 어김없이 ‘그 곡’이었다. 박문대는 오랫동안 무제였던 그 곡에 ‘길 잃은 별들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주었고, 그 노래의 작곡, 작사가의 이름에 언젠가 그가 아이돌이 되면 쓰고 싶은 예명이 있었다며 장난스레 말한 적 있는 ‘청려’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디. 뮤지션 박문대는 월드 스타라고 할 만큼의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페스티벌에 불려가고 적당한 사이즈의 공연장을 가득 채울 만큼은 성공했다. 박문대는 몰라도 ‘그 노래’는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걸?
“문대 형. 다음 주에 파리 공연 추가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서 에펠탑도 보시겠네요. 부럽습니다!”
“바빠서 그럴 시간 없을 거 같은데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으면 말해둬라.”
오랜만에 사무실에 들른 박문대는 해외사업팀과 어떻게든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한 럭셔리 브랜드 본사에 직접 초대권을 보내기로 했다. 박문대가 찾는 그 사람이 그곳에 일하고 있을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마땅하지 않았다.
신재현님 귀하
편지라도 남길까? 펜을 쥐고 한참 망설였지만 어떤 단어로도 좀처럼 그 순간 떠오르는 감정들이 갈무리되지 않아서 그냥 초대권 봉투에 인쇄된 이름만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고마워요. 전부터 파리에 꼭 오고 싶었어요.”
박문대는 파리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무대가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준비한 초대석의 빈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신은 그곳에 팔려 있었어도 파리에 오고 싶었다는 멘트만큼은 진심을 담았다.
“벌써 마지막 곡이네요. 전 여전히 길을 잃은 채지만 이 곡은 항상 저에게 계속 걸어가라고 말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노래 들어주세요. 길 잃은 별들의 노래.”
관중의 환호성이 공연장에 가득 채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팬들은 두 팔을 위로 뻗어 음악에 맞춰 좌우로 움직였다. 몇몇 팬들의 손에는 휴대전화의 플래시가 들려 있기도 했는데 물결처럼 좌우로 일렁이는 그 불빛이 별빛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별빛 사이를 헤매던 시선은 마침내 그림자 진 공연장의 한편에 닿았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던 신재현이 마치 영화처럼, 어쩌면 환상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축축해지는 시야에서 그 모습이 사라질까 봐 눈물을 참으려 했는데 금방 콧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행인 지경에 이르렀다. 신재현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박문대는 그가 사랑했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채 마지막까지 노래를 이어갔다. 그 모든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고 영원은 잘게 부서져 순간이 되어 반짝였다.
네가 날 찾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우리는 길을 잃은 별들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