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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히 박문대의 과거를 소개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공주가 되었다.

비록 남자지만, 일단 내가 무조건 공주를 해야 한단다.

어딘가 있을법한 소설의 클리셰처럼 알고 보니 아버지는 한 나라의 왕자셨고, 친할머니는 여왕이셨다. 모종의 이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 사실을 숨겼다. 악바리같이 숨기다가 박문대는 고1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은 당연히 거절했었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음에 앞만 보며 살아온 결과는……. 공주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돈도, 가오도, 미래도 안 보이는 곳에서 살 바에는 자신감 접고, 눈도 감고 공주 하는 편이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현재는 이름도 겨우 안 어딘가에서 박문대는 X 같은 연회용 붉은 여성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에 온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모두가 행복한 상황에서 홀로 불행한 건 익숙했지만, 시X 이렇게 개 같을 줄은 몰랐지.

“풉, 큽, 문대문대...”

“…닥쳐라.”

현 여왕이자 친 할머니의 배려로 인해 박문대와 같이 연회장으로 온 이세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바람 세는 소리를 내며 눈을 까뒤집고 참음에 옆에 있던 선아현이 이세진을 제지했다. 하지만 선아현도 웃기긴 한 모양인지, 자신도 말리면서 웃음을 참았다. 박문대 자신도 웃기지 않은 꼴이 될 수가 없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키 170 중반의 다부진 남성이 여성용 붉은 파티용 드레스와 왕관을 쓰면 누가 안 웃긴가? 25살 인생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착장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나와 한패를 먹으려는 사람, 이득을 보려는 사람 등. 전부 역시나 속물들밖에 없었다.

고급스러운 샴페인을 박문대는 홀짝이며 이리저리 연회장을 둘러보던 도중,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았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죽진 않으니까 괜찮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공주님.”

낯간지러운 말을 하고도 남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시선을 맞추며 생글거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쁘게 생겼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에 뒤따라온 이세진과 선아현이 안부를 물으며 괜찮냐는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연회장의 메인이 시작되었다. 남녀가 짝을 지어 단체로 사교댄스를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히 단순 초대 신분인 선아현과 이세진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구석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연회장의 반강제 주인공인 박문대는 그저 한숨만을 쉬며 여러 사람들과 춤을 춰야만 했다.

춤을 추는 시간조차 역시나 고역이었다. 어떤 이는 자신과 협약을 하자며 말을 거는 늙은 대신, 어떤 이는 이제야 막 13살이 넘어 보이는데 플러팅 거는 초등학생 어느 나라 왕자, 어느 사람은, 아까 발을 밟은 그 남자였다. 차분하고도 당당하게 옆에 서서는 말을 걸었다.

“같이 춤을 춰도 될까요?”

거절할 사유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자연스레 손을 넘겨받으며 허락된 춤에서는 다정함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뚝딱거리고 이상한 사람에게 걸려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던 찰나였다. 자연스레 맞잡은 손과, 부드러운 춤을 즐기기 시작할 때쯤에 박문대는 남자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타이밍이 좋으신 편이네요.”

“…하하. 별말씀을요 공주님.”

“…그 공주님이라는 호칭말고 그냥 이름 부르세요, 박문대입니다.”

한 번만 더 공주님 소리를 들었다가는 정말로 토할 것만 같았다. 박문대의 부탁에 남자는 알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보는 시선이 차츰 안정화가 되어감에 따라 박문대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는 단순한 질문에 남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답을 해주었다.

“신청려라고 부르세요.”

신청려. 어쩌면 자신 만큼 특별한 이름이었다.

“아까, 발 밟은 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문대씨라면 몇 번을 밟아도 상관없습니다.”

차라리 공주님을 계속 쓰라고 할걸, 후회했다. 분명 단답이었는데, 받아치는 말이 저렇게 낯간지러운 말로 받아주었다. 저런 말따위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신기했다. 이 상황이 저 사람은 역겹지 않나? 대강 보아도 이 나라에서는 신분이 낮은 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공주의 생일 연회인 지금 반강제 상태로 박문대 자신과 똑같이 있는 것이라 눈치챘다. 그렇다면 보통은 악을 쓰고 홀로 자유로 나가려 하지 않는가? 신청려는 아니었다. 다정하게 시선을 맞추며 그저 춤을 이어 출 뿐이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으로 결국 신청려와의 춤도 끝났다. 박문대는 얼마나 지속될지 모를 춤을 이어서 춰야만 했다. 비록 남자지만, 공주의 의무였다.

 

***

 

 

 

“왕위는 반드시 신청려, 너의 것이 되어야만 해.”

신청려의 삼촌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신청려는 알 방법이 없었었다. 시각은 연회 시작 2시간 전. 여유롭고 한가하게 궁궐 구석의 방에서 술을 마시며 신청려의 삼촌은 자신이 이탈리아의 철학자에게서 배운 다트 던지는 법을 가르쳐준답시고 시답지 않은 장난을 쳤다.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천천히 다가가 다트판 정 가운데에 다트를 세게 쑤셔박았다.

“그건 속임수가 아닌가요?”

싸늘히 웃는 표정을 유지 하며 물어보았다. 이에 그의 삼촌은 대답하였다. 바로 그거야, 속임수. 신청려의 입꼬리가 진실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

 

 

또다시 예상하지도 못한 사건이 나타났다.

공주의 신분으로서는 결혼하지 않으면 왕위에 오를 수 없단다. 시X 그럴거면 공주를 왜 시키는지 모르겠지만, 강제로 대략 30일 안에 정략결혼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공주 신분으로서 왕위를 못 오른다. 그래서 지금 당장, 왕위를 유지하며 궁에서 같이 생활할 사람을 만난단다. 어색한 친할머니와 걸음을 나란히 하며 도착한 응접실에는, 뜻밖의 사람이 있었다.

“인사드리렴, 신청려군이란다.”

“……신청려.”

설마, 연회장에서 일부로 부딪힌 건가?

그렇다면 확신이 든다. 그 넓은 연회장에서 어떻게 신청려만 발이 밟혔을까? 어째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공주 소리와 낯간지러운 소리를 자연스럽게 한건가? 라는 모든 의문에 답이 맞춰진다. 애초부터 기획된 계승권 싸움이었다. 공주 신분으로서 여왕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을 알고 시간을 맞추어 분명 계획을 짠 것일거다. 우연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하물며 계승권 싸움까지 맞붙을 정도면 분명, 본래부터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괘씸했다.

이번에도 여성용 원피스와 잔뜩 치장한 옷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당연히, 또 밟았다. 이번엔 선빵이었다. 가죽구두를 세게 내리찍어 짓밟자 신청려의 낯짝이 새파래졌다.

“X까”

선빵필승이 이루어졌다. 박문대의 하이힐로 짓눌러진 발을 어루만지며 소름 끼치게 웃고 있었다. 우아하게 걸음을 유지하며 걷는 박문대는 다짐했다, 죽어도 신청려에게는 왕위를 넘겨줄 수 없겠다고. 30일 안에 최상의 남편감을 찾아야만 했다.

신청려를 발로 짓밟은 그날 당일, 곧장 친할머니와 함께 박문대는 다른 남편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부 웬만해서는 꽝이었다. 늙거나, 지위가 약하거나, 너무 젊거나, 또는 위세가 강했다. 왕권 유지를 위해 적당히 높으면서도 숙일 줄 알고 왕실과 관련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 했는데…… 예상외로 있었다. 왕실 전용 비행사.

그렇게, 제대로 마음도 없는 상대와의 정략결혼으로 왕위를 찾을 시간만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복잡했다. 당연히 박문대의 계획대로 모든 것은 순탄했다. 예식, 신부 수업, 국민 발표 등등. 캔슬되는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결혼식 준비를 하기 위해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죽어도 보기 싫었던 신청려가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며 나타난 것이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시네, 결혼을 재고하시는 건가요?”

“……아뇨. 약혼자에게 받은 반지가 이뻐서 보고 있습니다.”

순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아직도 연회장에 있었던 일을 박문대는 잊지 못했다. 비록 공주라는 신분으로 뭣 같은 붉은 드레스 치장을 하고 나타난 그 자리에서 신청려만이 유일하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정치든, 사회적 분위기든. 유일무이하게 편하다고, 잠시나마 느꼈었다.

선택한 공주의 삶으로서 첫날부터 어려웠다. 조용히 살아가려 아등거리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드문 있었고, 연회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언젠가는 없어질 공주라는 신분으로 버텨내야 했다. 자신을 견제하는 자, 자신을 치려는 자, 자신을 미워하는 자 전부를. 고작 25살의 나이에, 박문대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정략결혼과 왕위 계승을 알아버린 날도 마찬가지였었다. 박문대 자신은 고작 약속 관계로 얽매인 정략결혼 따위 추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언젠가는, 찾아올 운명적 사랑을 때가 되어 기다릴 뿐이었다. 언제든 상관이 없었다.

“전 저의 왕위를 노리는 사람과 불필요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박문대의 시선이 거두어졌다. 신청려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

 

 

“30일만 버텨라. 30일 안에 지금의 약혼을 부수면 모든게 우리 것이 될거다.”

“……제 아버지는, 이런 것을 원하셨나요?”

신청려는, 어쩌면 약간의 죄책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네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네가 왕 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하. 전 그런 기억이 나질 않네요?”

“당연하지, 네가 6살 때 돌아가셨는데.”

아랑곳하지 않으며 슬쩍 웃는 자신의 삼촌을 신청려는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난생처음 느끼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었다.

 

***

 

 

결혼식 전의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말을 타야 하는 행사에서 기어코 박문대는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신청려의 삼촌이 박문대가 말을 타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자, 말의 특성을 파악했다. 말이 싫어하던 것은 뱀이었는데, 공주가 타고 있는 그 말 앞에 당당히 뱀을 던졌다. 그로 인해 말을 타지 못하던 박문대가 꼼수로 쓰려던 나무 목발이 보이며 대신들에게 망신당하는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아버린 것이다.

쪽팔림에 도망간 박문대가, 난잡하고 엉망인 작은 창고에서 그저 숨죽일 뿐이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미친 진짜 여왕 괜히 한다고 했나. 겨우 숨을 돌리고 있었다.

“…도망을 왜 갔어요? 사람들이 전부 이야기할 걸 알면서.”

“기분 안 좋으니까 제발 가세요, 안 그래도 쪽팔린 거 잘 압니다.”

“…오만하네요.”

저렇게 모질게 말하는 것까지 박문대는 전부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X같게, 설레는 마음은 사라지지가 않는다. 그저 눈을 맞추면 싸늘하게 식은 안광만이 보이는데, 그것이 이제는 애정으로 느껴진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저 가만히 창가를 바라보던 박문대가 창고를 벗어나기 위해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자, 급하게 신청려가 박문대의 손목을 낚아챘다.

“…미안해요. 문대씨,”

“됐습니다. 이젠 당신에게 더 이상 추한꼴을 보이고 싶지 않네요.”

그저 거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고, 거지 같은 축제가 다시 시작될 뿐이었다. 박문대는 이제 능숙하게 사람들의 안부와 사람들을 거르는 법을 완벽하게 알게 되었다. 다만, 이제는 정말 눈만 마주쳐도 도망가고 싶은 상대인 신청려를, 각자의 약혼녀, 약혼자와 함께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신청려의 말에 신청려의 약혼녀와 박문대의 약혼자가 자리를 금세 떠나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둘만 남아버린 휑한 분수대 앞에서, 아무것도 없이.

“…참고로, 전 이제 완전히 당신에게 눈길 돌릴 겁니다.”

“……당연하죠, 당신은 이제 약혼해야 하는데요.”

오랜만의 만남에, 역시나 안광은 없었지만, 신청려는 박문대의 선공격에 누가 봐도 화났다는 표정이었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박문대는, 부디 신청려의 감정이 질투이기를 바랬다. 박문대는 짧은 거리를 두고 본인 앞에 서 있는 신청려에게 곧장 입을 열었다.

“질투하시는 건가요?”

“전혀요. 제가 고작 왜 그분을 질투해야 할 이유가 뭐죠?”

진정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억지웃음이었다. 박문대는, 더 이상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마음을 식힌 적이 없었다. 신청려의 감정을 잘 알지는 못해도, 그가 해주길 바라는 감정은 현재 ‘질투’였다. 처음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낯간지럽게 말해주던 그 계략에 넘어갔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인지했다.

그리고 신청려 또한, 느끼고 있었다. 점점 박문대에게 스며 들어가는 것을. 처음은 계략일지 몰라도 현재는 점점 그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서로의 첫 만남이 지독한 악연이 되던 순간이었다.

박문대가, 신청려의 멱살을 잡고 아주 가까이 끌어당겼다. 결과는, 입술이 맞물렸다. 맞물린 입술이 깊게 포개져서는 서로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 눈을 떠보니 신재현의 귀가 새빨개졌다. 이에 놀란 박문대가 신청려를 드세게 밀쳐버리고 말았다.

“미친,”

“……생각보다, 기분 좋네요, 키스.”

우리 한 번만 더 해볼래요?

박문대가 신재현을 향해 ‘미친새끼.’라고 말하고 도망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박문대는 진정한 왕위를 택할 것인가, 꿈꿔온 운명적 사랑을 택할 것인가?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진하는 순간마저, 고민스러웠다. 이에, 결국 선택했다.

“잠시만 시간을 부탁드립니다.”

잠깐의 고민도 없이, 결혼식장을 잠시 나와 있었던 친할머니에게 박문대는 물어보았다.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현 여왕이자 친할머니가 답해주었다. 역시나, 할머니로서 조언해주자면. ‘너의 진심이 향하는 선택을 하라고.’

그래서, 박문대는 저질렀다. 결혼식을 하는 자리에서 당당히 결혼식 무효 선언을.

“그렇다면, 법에 따라 미혼은 여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 남은 후계자를 당연히 올려야겠죠?”

박문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한 신청려의 삼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신청려가 당당히 서 있었다. 모두가, 하나 남은 후계자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해했다. 결과는 모두가 흥미로울 정도로 신선했다.

“왕위를 거부합니다.”

왕을 이을 사람은, 오직 문대씨 뿐이죠.

웃음을 뒤로하고, 신청려와 그의 삼촌은 결혼식장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그의 삼촌이 얼굴을 붉히며 당연하게도 신청려에게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신청려는 아주 강하게 답했다.

“모든 건 끝났습니다.”

신청려가 박문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저런 올곧음, 순수함, 제아무리 시련이 닥쳐도 꺾지 못하는 기세. 아름다움까지. 영원히 박문대를 이기는 방법 따위, 알지 않으리라, 신청려는 다짐했다.

***

 

 

 

박문대는, 결혼 무효와 함께 자신을 옥죄던 법안마저 재빠르게 폐지해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세게 나올 걸 그랬을까. 홀로 남겨진 밤에 깊은 사색에 잠기던 순간이었다. 그저 혼잣말로 끝내려했던 질문이었다. 박문대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개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좋은 여왕이 될 수 있을까?

“당연하죠, 문대씨라면 할 수 있습니다.”

양해해주신다면, 폐하를 알현하고 싶습니다.

익숙하고도 낯선 신청려의 목소리였다. 박문대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곧장 고개를 돌리자, 그가 보였다.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품위 있게. 구두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다가왔다. 신청려는 박문대의 앞에서 질문을 날렸다.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왕이 되실 분을 사랑하게 되었네요?”

신청려의 첫만남은 완벽한 계략이었다. 허나, 이제는 전혀 완벽한 사랑이 되고 말았다.

“그분도, 저를 사랑하실까요?”

신청려의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푸른 눈의 생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유난히 깊은 밤이었다.

“피하지마.”

박문대가 신청려와 자신의 사이를 좁혔다. 비록 그때와 같은 불편한 드레스의 하이힐 차림이었지만 거리낌 없었다. 이제는 마땅히 여왕으로서 누려야 할 의무이자 권리였다.

마침내 좁혀진 거리는 그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리, 한 번 더 할까요?”

“언제든.”

박문대가 신청려의 멱살을 다시금 잡아채 입술이 맞물렸다. 그때는 즐길 수 없었던, 자신의 옥죄는 모든 것을 제 편으로 만든 지금. 그저 즐겨야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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