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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cting my Lovers from the fxxking system

□□□□□□

 

극심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티 없는 방바닥에서 뒤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머리가 아팠고, 몸이 떨렸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슬퍼지는 것 같았다. 괜찮으냐 묻는 손들이 다정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다 못해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간호해주던 다정한 손들은 없었다.

 

“망할….”

 

시커먼 방안은 시릴 만큼 고독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가 대체 얼마 만이지? 이 시스템 새끼가 또 날 엿먹이려고. 류건우 시절 공시 준비를 하던 그 칙칙한 방안에 앉아 얌전히 마음속으로 상태창을 불렀다. 이번엔 또 뭘 하면 되는데, 뭘 해야 다시 날 돌려보내 줄 건데.

하지만 상태창은 나오지 않았다.

…얘가 안 나타난다고?

 

“상태창.”

 

…….

 

“상태창!”

 

쾅!

꼭두새벽부터 미친놈처럼 상태창을 외치는 놈 때문에 잠을 방해받은 옆집 사람이 벽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안 나온다. 평소엔 진즉 뭘 시키고 남았을 놈이 나타나지를 앉았다.

류건우는 어느 날 박문대가 되었던 그날처럼 어느 날 다시 류건우가 되었다.

지랄 마. 그게 다 꿈이라고? 난 아시발꿈엔딩도 싫어한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데뷔했는데, 나 죽이려던 신재현도 구슬리고….

 

“신재현.”

 

그래, 신재현이 있지.

이 세상엔 테스타가 없다. 스티어도 없고. 근데 신재현은 있지. 걔는 언제나 있었으니까.

 

“윽….”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쓰러지기 전만큼 끔찍하게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어지럼증과 두통이 계속 몸을 괴롭혔다. 서랍에 있는 타이레놀을 먹었지만 삼키면서도 이게 전혀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이는 안보고싶냐]

 

익숙한 번호로 문자를 보내놓았다. 보면 뭔가 반응을 하겠지.

…그리고? 상태창이 없고 몸도 박문대가 아닌 류건우가 신재현을 만난다고 뭔가 해결이 되나? 게다가 이쯤의 신재현은 지금의 개를 키우는 순두부 같은 놈도 아니다. 미래 정보를 알고 있다 하면 흥미를 보이겠지만 정보만 빨아먹고 버릴 생각도 하겠지.

그렇게 둘까 보냐. 어떻게든 다시 날….

지잉.

 

[문자 잘못보내셨습니다]

 

뭐?

다시 들여다보아도 문자가 바뀌지는 않았다. 신재현의 번호로 온 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신재현이 제 과거를 알고 있는 놈 같은 미끼를 안 문다고?

손가락이 ‘신재현’까지 쳤다가 황급히 지웠다. 브이틱 신상을 노출하면 안 되니까. 깜빡이는 커서를 보다 이마를 문질렀다. 겨우겨우 쳐서 보낸 문자였다. 

 

[재현아]

 

지잉.

 

[문자 잘못 보내셨다고요 저 재현이 아닌데요]

 

얘가 번호를 바꿨나. 아닌데, 이때는 이 번호가 맞는데….

손가락은 통화 버튼으로 향했다. 수신은 얼마 가지 않았고 어떤 여자가 받았다. 문자로 많이 신경질이 돋궈진 상태였는지 받자마자 잘못 거셨다고 말하는 목소리엔 귀찮음이 여실히 묻어났다.

 

-“저 재현인지 뭔지 아니라고요.”

“이 번호… 쓰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몇 년 됐는데요…. 저기 괜찮으세요?”

 

그럴 리가 없어….

여자는 끊기는 듯한 목소리에 금세 걱정하는 기색을 비췄지만 건우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기록을 몇 분이나 노려보았지만 번호가 틀린 건 아니었다. 잘못 기억할 리가 없다. 그럼 신재현이 번호를 바꿨나. 그럼 어떻게 연락을….

끔찍한 두통 때문에 사고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야겠어.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계단을 내려가며 비틀거리는 시야에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난간을 붙들었다. 계단이 어지럽게 길었다. 힘겹게 내려와 바깥바람을 쇘지만 여전히 손이 떨리고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신재현에게 연락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갈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퍽.

주먹으로 이마를 내리쳤다. 옆에 앉은 중학생이 쳐다봤지만 뼈의 굴곡으로 더 힘있게 이마를 눌렀다. 이 통증 덕에 계속 머리를 어지럽히는 두통이 조금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1시간째 피시방에 죽치고 앉아 데이터 팔이 계정을 뒤졌다. 브이틱 사생들이 털고 다닌 번호가 분명 비계에 떠돌아다닐 것이다. 거의 자신감에 찼던 확신이었지만 로그인을 하자마자 이상함을 느꼈다.

티카들의 비계가 없었다. 트위터의 리스폰은 현저히 느렸다. 류건우 계정은 돈 되는 건 아무거나 찍고 다닌 듯 배우나 트로트 가수의 스케쥴까지 팔로우 되어 있었다.

 

“야, 너 그거 안 먹을 거니.”

“예…?”

“그 네스퀵, 안 먹을 거냐고.”

 

중학생 아이가 가방을 뒤지다 꺼낸 네스퀵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아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미 미지근해진 네스퀵을 내밀었고 나는 작게 고맙다는 말을 내뱉은 뒤 급하게 빨대를 꽂아 네스퀵을 빨아마셨다. 초콜릿우유의 단맛이 입을 타고 넘어가자 조금은 두통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아픈 게 덜하니 조금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리가 날 때까지 빨아들이던 종이팩을 뱉고 검색창에 ‘브이틱’을 검색했다.

 

“후우…, 씨발.”

 

피시방에서 음식을 시키는 건 멍청한 짓이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똑같은 게 마트 가면 최소 사백 원은 더 싸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걸 알면서도 손이 움직였다.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초콜릿우유 열 개를 시켰다.

신재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중구난방의 컨셉 사진과 사진마다 달라져 있는 멤버의 수, 연관 검색어에 있는 ‘해체 이유’까지. 이미 신재현이 죽어버린 세상에 와있는 거라 생각했다. 얘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말아먹었구나. 그리고 난 타이밍 좆같게 여기 있는 건가 했다.

그럼 씨발, ‘청려 자살’ 같은 키워드가 있어야지. 대가리 꽃밭 같은 생각 그만해.

아르바이트생이 가져온 초콜릿우유를 네 팩정도 연달아 마셨다. 다섯 명, 일곱 명, 여덟, 아홉. 아홉 명이던 최초의 브이틱부터 결국 해체한 다섯 명이 되기까지. 그 음침한 얼굴들 사이에선 청려는 없었다. 전부 그어진 이름을 다 눌러보아도 신재현이란 이름은 없었다.

신재현은 브이틱으로 데뷔하지 않았다.

말이 돼? 씨발, 말이 되냐고. 나는 단 한 번도 신재현이 없는 세상에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신재현은 항상 내 앞에 있었단 말이다.

검색창에 ‘청려’를 검색해도 원하는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이것을 찾으셨나요? 청렴]

 

이딴 쓰레기 같은 결과만 나왔지.

신재현이 아이돌을 안 하는 세상이 있나. 말이 되나. 그 천상 아이돌이. 그러나 그걸 확신하기엔 소셜미디어엔 신재현이란 사람이 너무 많았다. 포털 속 수많은 신재현 목사, 신재현 의원…, 신재현법.

하하, 신재현 의원께서 뭐 대단한 법이라도 발의하셨나.

두통이 올라오는 듯해 초콜릿우유 한 팩을 뜯었다. 초콜릿우유로 배가 출렁일 지경이었지만 꾸역꾸역 마셔야 했다. 그 괴상한 네이밍 법안을 검색하려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파졌으니까.

 

[강남구 어린이 난간 추락사고 사망사건

신재현군이 4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

난간이 낮았던 것이 원인

입법과정…

제40조(옥상광장 등의 설치) ① 옥상광장 또는 2층 이상인 층에 있는 노대(露臺)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의 주위에는 높이 1.2미터 이상의 난간을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그 노대 등에 출입할 수 없는 구조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얘….”

“네? 어….”

“너 그 냅킨 쓸 거니.”

“…여기요.”

 

옆자리 중학생 아이가 짜파게티를 시키며 받은 냅킨 세 장을 빼앗았다. 이상하게도 많이 흘러나오는 눈물과 콧물을 닦으려 안경을 벗었다. 그러자 화면에 나와 있던 아이의 사진이 흐리게 보였다. 눈을 몇 번이고 꾹꾹 눌러 눈물을 닦아내고는 다시 안경을 얹었다. 콧물을 훔치며 본 정면엔 여전히 활짝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떠있었다.

새하얀 얼굴과 분홍빛 뺨, 그럼에도 유전인 듯한 깊은 이목구비는 영락없는 신재현이었다.

죽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어릴 때, 아이돌이 되지 못하고.

신재현이 죽었다.

 

지지… 직.

 

“……?”

 

블루스크린이 뜬 화면을 어이없이 쳐다봤다. 아니, 이 상황에 블루스크린까지 뜨는 거냐고, 나는 지금….

 

:(

Your system ran into a problem.

You have to start.

If you want to save him, go to 37.511174, 126.976465.]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이는 순간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 손은 외운 좌표를 지도에 검색했고 다리는 이미 달려나가고 있었다. 

시스템이다. 시스템이었다.

그래, 네가 나한테 명령을 안 할 리 없지. 신재현을 살리고 싶냐고?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죽도록 달리고 있는 거 아니야!

 

[올라가세요!]

 

빌딩 이름을 이따위로 짓는 멍청한 건물주는 없겠지. 그러니 이건 시스템이 해놓은 지표다. 제대로 오긴 했구나. 폐가 터질 것 같았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러나 아침부터 괴롭혀오던 두통과 어지러움이 사라짐을 느꼈다.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별로 높지 않은 높이의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반 층 높이의 계단을 끝으로 육중한 철문 앞에 다다랐다.

 

[류건우 외 출입금지]

 

철문이 열리고 빽빽한 건물로 막힌 옥상의 전경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맞은편 건물의 커다란 전광판과 허리춤에 오는 난간.

 

[Fall down!]

 

전광판 속의 배우는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브랜드 이름은 추락하라고 한다.

여기는 신재현이 재시작한, 바로 그 겨울날의 옥상.

 

“허억…, 허억….”

 

선택지는 없다. 여기서 떨어지는 게 그냥 개죽음인지 아닐지 그걸 계산할 시간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무식하게 뛰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변 건물에 비해선 낮지만 이 건물도 한번 떨어지면 바로 즉사할 만큼 높은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매번 몸을 던졌다고?

 

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

 

넌 그 바짝 마른 몸에 절반은 간덩이일 거야.

콧대를 타고 눈물과 땀이 섞여 떨어졌다. 맞은편 건물의 모든 간판이 ‘Fall down!’로 바뀐다.

난간을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정말 구할 수 있는 게 맞겠지.

몸의 절반이 난간 밖으로 넘어가자 그대로 중심이 넘어갔다.

 

“아악!”

 

추락하는 속도는 느렸다. 추락을 종용하던 커다란 건물이 폭삭 낮아졌고 날씨가 무수히 바뀌었다. 날짜가 계속 바뀌는 신문이 날아들었고 사람들의 자동차와 옷차림이 바뀌었다. 그게 다 보일 정도였다.

 

                                   이

                                                               이

                                                                                             이

                                                                                                                                           익.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제멋대로 빨라졌다가 느려졌고 얼굴 피부로 닿는 공기에 기묘한 이질감이 느껴질 때였다.

바닥과 내 머리는 십 센티가량을 남겨놓았고 세상은 멈췄다.

 

“…후, 뒤지는 줄 알았네.”

 

얌전히 바닥에 서니 다리가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다리로 한 발 한 발 걷는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꼴이 웃길듯한데도 보며 비웃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류건우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 또 신재현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데. 이 자식이 또 어디엔 괴상한 힌트를 남겨놓았을지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명확한 이질감에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옆을 스쳐 지나간 남자는 여자로 바뀌었고 맞은편에 가던 노인은 아이가 되어 뛰어간다. 빌딩 숲이 공원으로 바뀌고 다시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공간이 바뀐다. 시스템이 지배하는 공간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적극 세상을 주무르는 것을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

 

횡단보도의 한가운데, 빨간불인 신호등. 이곳에 멈춰 서있던 발을 급히 물러 교통섬에 멈춰 섰다. 재수 없게 저런데에 사람을 멈추고 난리야. 다행스럽게도 차는 몇 대 없었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초등생들은 가득했다.

설마 이 무리에 신재현이 있나. 시스템이 이곳에 멈춰 선 것은 필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여기 신재현이 있든지, 곧 나타난다든지. 아니면 방금처럼 멍청하게 건널목에 서 있다 치이기라도 하면 정의로운 신재현 학생이 뛰쳐나와 구급차라도 불러준다든지.

교통섬이 서 있는 작은 머리통들을 샅샅이 살펴도 신재현 같은 어린이는 없었다. 그런 애가 눈에 안 띌 리도 만무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신재현…?”

 

신호가 바뀌고 아이들이 뛰어나가자 자연스레 그 머리통들을 따라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다. 담벼락이 만든 그늘 아래 잿빛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가만히 서 있었다.

이번에 다리가 바로 달려나가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겠지. 무슨 위화감 같은 것. 창백한 피부를 덮은 검은 셔츠가 좀 더워 보이긴 했다. 아이들의 옷이 너무 밝고 가벼워 더욱 그게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아이일 거라 생각한 신재현이 여전히 어른인 모습이라 단순히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인가.

 

‘옆 을 봐 요.’

 

뻐끔거리는 입모양을 읽었다. 시선이 너한테 잡혀있는데 어떻게 보냐. 눈이 안 떼질 것 같다. 그냥 계속 이대로 신재현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신재현이 새하얀 손이 들어 올려진다. 그 손은 담벼락의 그늘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듯 뻗어졌다. 그 손끝에 시선이 붙박였다. 신재현이 손을 들어 올리는 대로 고개가 움직였다.

그 새하얀 손가락이 부드럽게 꺾이는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타다닥.

그곳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끼이익.

새하얀 피부와 까만 머리칼.

그래, 저게 가장 예상했던 모습이다. 바짓단 아래로 드러난 발목은 손목처럼 가늘었고 그 발을 잽싸게 놀려 4층짜리 건물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신재현군이 4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

 

나 오늘 대체 몇 번을 뛰는 거야. 힘들어 죽겠네!

상가 건물 안으로 사리진 아이를 향해 달렸다. 단 한 번도 신재현의 어린 시절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다 눈에 잡힌 그 찰나의 순간마저도 뒷모습이었지만 확신했다.

저건 신재현이다. 오늘 죽는 신재현.

타다닥.

4층 높이의 계단을 빠르게 뛰어오르는 아이를 따라 두 칸, 세 칸씩 뛰어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달려나가는 가녀린 다리보다 빠르게 심한 엇박자의 발소리가 건물을 울렸으나 어린 신재현은 멈추지 않았고 나 또한 그랬다.

근데 이렇게 달려도 왜 따라잡을 수가 없지. 겨우 어린애가 한 칸 두 칸 올라가는 걸 내가 세네 걸음씩 뛰어올라가고 있는데 왜 쟤는 여전히 멀지. 4층짜리 계단이 이렇게 길다고?

 

“신재현!”

 

아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내 걸음이 느려지거나 빨라져도 신재현과는 한층 반 정도의 차이가 났다. 이상함을 느끼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1 / 2]

[2 / 3]

[3 / 4]

[4 / R]

[1 / 2]

[2 / 3]

[3 / 4]

 

한 층을 더 올랐을 때 여전히 앞만 보고 올라가는 아이를 무시하고 칠이 벗겨져 가는 철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끼익 소리에 묻힌 것인지 일정하게 들리던 가벼운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건 옥상의 풍경, 그리고 아이의 다리에 겨우 차는 난간 너머로 반은 넘어가 있는 신재현의 몸이었다.

 

“재현아!”

 

뒤를 돌아보는 뺨이 동그랗다. 아이 특유의 보드란 젖살에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급박해서 찡그려진 표정에 미소가 합쳐지면 무슨 표정이지? 어쨌든 괴상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어린 신재현이 저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볼 리가 없으니까.

 

“…….”

“으아아…!”

 

조그마한 아이를 끌어안은 채 급하게 뒷걸음질쳤다. 종아리 정도 높이의 낮은 벽이 이 건물의 옥상을 두른 안전장치의 전부였다. 여긴 사람이 들어오는 데가 아니다. 그게 확실해지자 신재현이 오늘 죽을 뻔했다는 게 끔찍할 정도로 실감이 났다.

초록색 방수 페인트로 칠한 바닥에 주저앉고 나니 품 안에 꽉 끌어안고 있는 가녀린 몸이 느껴졌다. 벌벌 떨리는 손과 다르게 안고 있는 몸은 미동도 없었다.

어떻게 그러지. 자기가 떨어질 뻔했다는 자각이 없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와중에는 계단을 끝없이 뛰어올라가던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살짝 고개를 내려본 아이는 그저 아쉬운 듯이 난간 쪽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려가자.”

“…….”

 

신재현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난간을 볼 뿐 별말이 없었다. 아예 옥상 문을 잠그고 나오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어?”

 

한참 조용히 있던 신재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얘 어릴 때 목소리는 이렇구나. 단정하고 선명한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왔다.

 

“저로서는 모르는 사람인데 제 이름을 알고 계셔서요.”

“난 너 알아.”

 

얘 어린애 맞아? 속은 내가 아는 신재현인 거 아니야?

 

“제 기억엔 없어요.”

“도와주러 왔는데 의심하냐?”

“저는 위험한 일 하러 올라간 게 아니에요.”

“그럼 뭔데.”

“강아지 소리가 들렸어요.”

“…….”

 

옥상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도와주신 건 감사해요. 누구신진 모르지만….”

“지금은 모를 수도 있지.”

“…나중에 알게 된다는 거에요?”

“네가 크면 알게 돼. 그런 영화 있잖아. 뭐더라…, 맨 인 블랙?”

“맨 인 블랙에 그런 내용은 없어요.”

“너, 꼬맹이가 맨 인 블랙은 어떻게 알아.”

 

신재현은 고개만 살짝 갸웃거렸다. 그 익숙한 버릇에서 속절없이 어른의 신재현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아는 신재현과는 많이 다른 게 당연한데도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지금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 신재현도….

 

‘---’

 

신재현이…, 신재현이…, 어쨌더라.

 

“전 가볼게요.”

 

내가 기억나지 않는 공상에 빠져있느라 폴짝 뛰어내린 아이가 몸을 돌릴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두 팔이 허전해지니 공상에서 빠져나와 이미 멀어지려는 아이에게 소리쳤다.

 

“너 어디가!”

 

이게 끝인가. 죽는 건 막았어. 별다른 이유 없이 신재현을 잡아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는 데에 불안감이 끼쳤다. 오늘 죽는 걸 막아서 끝이냐고. 상태창이든 뭐든 보여야 말이지.

그러나 다그치듯 부르는 내 목소리에도 이미 멀찍이 가버린 신재현은 별 감흥도 없다는 듯 몸을 살짝 돌린 채 말했다.

 

“레티요.”

 

잘가라든가, 이제 위험한 짓 하지 말라든가. 뭔가 인사를 해줘야 하는데 너무도 익숙한 명칭에 나는 가만히 굳었다.

대기업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동이던 시절부터 그런 삶을 거쳐온 걸 아는데, 쟤가 신재현인 걸 아는데 왜.

낯설 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이미 내가 아는 사람과 아주 유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잘 가라는 말이 안 나왔다.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하겠지. 그리고, 그리고….

 

‘네가 크면 알게 돼.’

 

나를 만난다.

 

‘부럽네?’

 

보송보송하던 그 얼굴 위로 가장 가슴 졸이던 순간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 같았다.

…신재현을 구해서, 브이틱이 데뷔하고.

 

‘부럽네?’

‘부럽네?’

‘부럽네?’

‘부럽네?’

‘부럽네?’

 

“…….”

 

그림자도 길어진 시각,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멍청하게 서 있던 나는 내리쬐는 햇볕이 시원한 그늘로 바뀌고서야 멀어지는 신재현에게서 눈을 뗄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갈까.”

 

잿빛이 아니었네. 흩날리는 신재현의 새하얀 머리칼을 인식하니 공간이 바뀌었다. 보도블록이 무너지고, 담장이 무너지고, 하늘이 무너졌다. 새하얀 공간은 명암이 없었고 그 공간 속, 신재현의 모습을 한 시스템은 꾸며 놓았던 색마저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의식적으로 돌아간 시야엔 무너져가는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는 어린 신재현이 보였다.

 

“…너 쟤 왜 죽였어.”

“살리도록 도와준 게 난데.”

“도와줘?”

 

신재현의 모습을 한 시스템은 별 감정 없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래, 길을 제시해준 건 맞지. 그것도 도움이라면 도움인가. 근데 난 왜 그 계단을 헤맸지. 왜 신재현은 있지도 않은 강아지 소리를 들었을까. 뭘 도와주고, 어떤 위해를 끼친 건지. 이 세상에 떨어진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죽이려는 무언가 있다면 살리려는 무언가도 있지 않겠어.”

“신재현을 죽이고 싶었다고?”

“나만큼 살리고 싶어하는 염원은 없어.”

“그럼 뭔데.”

“소원을 빌 땐 신중하게.”

 

시스템이 고개를 돌린 곳엔 그다지 멀어지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주위로 서서히 땅이 복구됐다. 검은 아스팔트와, 신호등. 자동차가 버젓이 다니는 도로 한가운데를 신재현은 인도처럼 가로질렀다.

 

“이게 무슨….”

“현재 사용자가 원하면 소원을 무효화시킬 수 있어.”

 

신재현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말한다. 그제야 진짜 상태창이 보였다. 이것저것 전부 깨진 상태로.

 

[□□□□□□□□□□□□□

 

Yes / No ]

 

전혀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태창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의 속은 그대로 느껴졌다. ‘Yes’를 누르도록 종용하듯 ‘No’가 지워져갔다. ‘Yes’를 고르니 어린 신재현의 주위로 만들어지던 배경은 하나둘 허물어졌다. 천천히 사라져가는 도로 전경을 보니 신재현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느새 하얀 공간을 넘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상태창은 깨진 언어를 처리 중이었다. 여전히 신재현의 모습인 게 불만이었지만 이 외양을 보는 게 나쁘지 않아서 그 꼴은 집어치우라는 모진 말도 할 수 없었다.

점점 더 밀도 높은 흰색이 되어가는 공간이 느껴졌다. 이곳이 사라지고 있는 건가. 누군가의 소원이 취소됐으니 없던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시스템의 단호한 결정이 느껴졌다. 신재현이 데뷔하지 못하는 세상이 없던 일이 되어갔다.

 

“뛰어내려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그 얼굴로 익살스러운 체 건네는 말을 끊어냈다. 새하얗게 변하는 공간을 따라 그에 동화되어가는 신재현의 몸이 계속 신경 쓰였다.

 

“기억 지워.”

“음?”

 

저 어쭙잖게 신재현을 따라 하는 행동은 정말 집어치웠으면.

 

“어차피 없던 세상이면 내 기억도 지워.”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싶어하는 걸 내가 아는데.”

 

‘레티요.’

 

“기억 지워.”

“…….”

 

이 새하얀 공간은 어떤 광원의 한가운데 같기도 했다.

 

-

 

눈이 부셨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내리쬐는 빛이 느껴졌다. 배 위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고, 차갑고 부드러운 느낌이 얼굴을 간질였다.

눈가를 찌푸리자 차가운 것이 얼굴에서 멀어져갔다. 괜히 아쉬워 얼굴을 움직이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는 손과 귀를 간질이는 웃음이 들렸다.

 

“많이 피곤했나 봐요.”

 

눈을 깜빡일수록 얼굴은 선명해졌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걸친 신재현이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게 되자 몸이 움찔거렸다.

 

“왜 그래요?”

 

소곤거리듯 물어오는 단정한 목소리가 선명했다. 가는 뒷목을 손바닥으로 감싸자 신재현은 저항하려는 기미도 없이 순순히 고개를 숙여주었다. 입을 맞추면서도 기이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기고만장한 기분은 뭐지.

 

“윽…, 후배님 그만….”

“좀만….”

“목 아파요….”

 

그 말에 내 손은 뒷목에서 냉큼 떨어졌다. 신재현이 손이 있던 자리를 슥 만지고는 내게 짧게 입을 맞췄다. 아쉬운 기분에 몸을 일으키는 신재현을 따라 일어나니 그제야 잠들기 전에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보다 잠들었나. 신재현이 잠든 나를 곱게 눕혔던 모양이다. 배의 따뜻한 건 콩이의 머리였는지 몸을 일으키자 콩이가 머리의 방향을 바꾸었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화면 속 중년의 남자가 선글라스를 쓴 채 소년에게 뉴럴라이저를 내밀었다. 기억을 잃게 하는 빛이 짧게 번쩍였고 소년이 눈을 깜빡였다.

 

“우리 원래 이거 보고 있었나.”

“계속 잤으니 모르겠죠. 이것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이거 엄청 옛날 영화잖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첫 번째 시즌은 오래됐는데 세 번째가 아주 늦게 나왔더라고요.”

“본 영화야?”

“늦게 봤어요.”

“근데 또 본다고.”

“이 시리즈 중에 제일 재밌어요.”

“…다 외계인이랑 싸우는 거 아닌가.”

 

신재현은 결말로 달려가는 영화를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보고 있었다. 한층 신나는 배경 음악과 긴장감이 풀어진 주인공들의 표정이 끝을 알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에요.”]

 

“끝났네.”

 

[“케이가 팁 주는 걸 까먹었다면 모를까.”]

 

평화롭게 끝나는 줄 알았던 영화는 다시 긴장감 넘치는 배경음악이 나오면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떨어졌다. 이게 무슨…? 자다 일어나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와 달리 신재현은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참 다행이에요.”]

 

뭐야, 페이크였잖아. SF 물에 어울리는 일렉트로팝이 흘러나오며 제작진의 이름이 오래전에 유행했던 폰트로 떠올랐다. 왜 이 편이 제일 재밌다는 걸까. 신재현이 SF 취향일 것 같지는 않았는데.

신재현이 소비하는 모든 미디어는 취미가 아닌 교양의 영역이다. 늘 함께 소비해왔지만 이것저것 감상을 말하는 나와 달리 신재현의 평가는 단편적이었다. 재밌다는 감상도 오랜만에 들은 평가였다.

신재현은 ‘좋아요’까지 눌러주고는 또 다른 영화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신재현이 어떤 영화가 좋은지 물었지만 무수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썸네일 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뭐가 좋았는데.”

 

액션물에 신호가 멈추자 플랫폼은 해당 영화를 미리 보기로 보여주었다. 절벽에서 뛰고 기차 위에서 달리는 배우의 모습과 긴박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신재현만 보고 있었다.

 

“후배님은 할 수 있어요?”

 

폭발음과 함께 신재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폭발음과 배우의 고함에도 신재현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뭘?”

“파트너를 위해 빌딩에서 떨어진다든가?”

“어.”

“…한다고? 정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에 신재현은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어, 할 수 있어.”

“후배님이 그런 리스크 큰 행동을 한다니….”

 

진짜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재현이 시험처럼 내민 그 말이 별일 아닌 듯이 느껴졌으니까. 신재현은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진심인 걸 느꼈는지 배시시 웃음 지었다. 저렇게 기뻐한다면 빌딩에서 뛰는 건 몇 번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넌 못하겠냐?”

“음? 난 꽤 후배님을 위해 어떤 리스크라도 졌다고 생각하는데.”

 

망할, 틀린 말은 아닌데. 하얀 손이 마른 가슴팍을 짚었다. 움직이는 손은 그간 저 몸이 겪어왔던 위험한 순간을 하나하나 일깨워 주듯이 느렸다. 결백이라도 주장하는 듯한 그 몸짓에 마른 침이 넘어갔다. 이거 의도하는 건가. 넘어가 줘야 하나. 허리에 손을 얹으니 신재현이 생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필요하다면 더 해줄 수도 있어요.”

 

아니었군. 눈치 없었다. 허리를 쥔 손에 힘을 주니 신재현은 그 손은 잡아 제 등허리에 둘러놓았다.

 

“…나도.”

“응?”

“저런 건 몇 번이든 할 수 있거든.”

“…….”

“너 지금 말로는 뭘 못하냐고 생각하고 있지.”

“아뇨. 후배님이 거짓말하면 난 아니까.”

“…참나.”

“감동적인데요.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평소엔 안 들었다는 거냐.”

 

신재현은 대답도 없이 몸을 기대왔다. 어디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추궁하고 싶었지만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별말 없이 기대오는 몸을 끌어안았다. 얇은 근육의 층 너머로 부러질 듯 가녀린 뼈가 느껴질 때까지 힘을 주었다. 갑갑하다는 듯 조금씩 움직이는 몸을 따라 너무 느려 잘 들리지도 않는 심장박동이 넘어왔다.

 

“이렇게 안으면 좋은가요? 난 답답한데.”

“좋아.”

“그래요.”

 

밀착되어 있는 몸에 힘을 풀지 않았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지. 뭐, 넌 이해 못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난 네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 순간이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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