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목소리의 행방

타르시안들과의 휴전 협정은 지지부진했다.

간신히 그들과의 소통 방식은 찾아내었지만 생각 방식의 현저한 차이로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탓이었다. 때문에 대 타르시안 원정대와 트레이서 조종사는 계속해서 선출되었다. 기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규칙 또한 생겨났다.

원래도 중학교 과정까지는 의무이수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우주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5기 이후부터는 의무교육과정은 반드시 지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항목이 신설되었다. 형식적인 교육을 지양하는 동시에 지구의 환경에 대한 관심과 가족들과의 유대가 어쩌고 하는 명목이었지만, 중학교 시절 이미 가족을 잃은 건우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었기에 흘려들었다.

8기부터는 의무교육 이후 고등학교 생활도 최소한 1~2년은 지구에서 보내면서 시뮬레이션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 권장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일반 학교에서 오전 일과를 마친 후 조퇴하고 거점 훈련소에 모여서 훈련을 하는 형태였다. 훈련 중도에 낙오된 학생들이 사회로 돌아가 적응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사실 트레이서 조종사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함선 승무원으로 남거나, 승무원으로 남기도 어렵다면 우주 정거장에서 일하게 되는 등 관련 진로로 전향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후배가 생기기 전까지는.

 

신재현.

후배라고는 해도 같은 9기생이었지만 그보다는 한 학년 아래였다. 훈련소가 변경되면서 건우와 같은 지역에서 훈련을 받기로 정해진 후배들은 몇 명 더 있었다. 하지만 건우에게 의미를 가진 것은 오로지 재현 하나였다. 굳이 지구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의미가 있는가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것도 아무래도 좋아졌다.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예쁘장하면서도 잘생긴 후배가 생겼네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그 후배가 저에게 친근하게 군다 싶은 정도. 그렇게 친근하게 구는 사람이 류건우의 인생에 적은 것도 아니었다. 일반 학생들은 트레이서 훈련생인 저에게 제멋대로 기대하며 다가왔다가 집안 사정을 알고는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같은 훈련생들과도 어쩐지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래서 재현이 제게 다가왔을 때도 건우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마주 친근하게 굴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재현이 따라붙는 대로 함께 조퇴를 했고 훈련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함께했다.

“선배 집에 놀러가도 돼요?”

어느 날 던져진 질문에 건우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상관없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

아마 그 편이 더 편해서 좋다는 대답이나, 혹은 왜 아무도 없느냐든지 부모님은 언제 돌아오시냐는 질문 같은 게 되돌아오겠지. 하지만 재현은 건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던졌다. 재현의 눈꼬리가 장난스러운 곡선을 그린다.

“선배, 그거 왠지 음흉하게 들려요.”

“큽.”

예기치 못한 대답에 건우는 성대하게 사레가 들렸다. 기침을 하는 건우의 등을 살살 두드리며 ‘혹시 정곡이었어요?’ 따위의 말을 지껄여서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들겼더니 맑은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같은 남자끼리 얼어죽을 음흉은 무슨.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뭐라고 더 얘기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집에 데리고 왔더니 재현은 신기한 듯이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재잘거렸다. 선배 방은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어두운 색 좋아하는구나.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나도 다음에 찍어주면 안 되나?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녀석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건우 선배 혼자 사나 봐요? 자취해요? 파일럿들은 보통 혼자 사는 거 잘 허락 안 해주던데.”

“부모님 안 계신다.”

결국 말을 하게 되는군. 집에 들여보내기 전에 말하는 게 좋았을까 싶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냥 언제나처럼 상대가 당황하다가 자연스럽게 거리가 벌어지겠지. 그런 이들이 건우를 아주 꺼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저들 쪽에서 항상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일종의 미안함과 우월감이 뒤섞인, 뭐라고 한 마디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을.

하지만 재현의 눈동자에서는 그 어떠한 감정도 읽어내기 어려웠다. 무기질적으로까지 보이는 검푸른 눈동자가 깜박이는 눈꺼풀 아래로 숨어들었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아아, 그래서. 재현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은 어떠한 납득이 그 아래에서 스쳐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깜박이던 눈꺼풀이 서서히 나풀거리기 시작한다. 나긋하게 휘어진다.

“그러면, 나 다음에는 놀러 오면 안 돼요?”

“…그런 얘기는 아닌데.”

“그럼 됐어요.”

재현은 빙긋 웃었다. 건우는 그 웃음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에는 훈련에서 같은 조가 되었다. 재현은 건우 형과 손발을 맞추는 것이 기대된다며 웃었다. 언제부터 호칭이 형으로 바뀌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형으로 불렸을 때의 간질간질한 기분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형이라고 불린 건우가 조금 당황하자 재현이 눈을 휘며 웃던 모습도.

“왜요? 형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건우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재현이 눈을 더욱 휘며 웃었다. 훈련에서는 교관들의 극찬을 받을 정도로 손발이 잘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갑작스런 폭우를 만나 함께 달렸다. 함께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웃었다.

가을에는 조가 다시 갈라졌다. 다른 사람들과도 합을 잘 맞춰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재현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못마땅한 눈치였다.

조별 성적이 누가 높을지 내기를 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동점이 되었다. 개인 성적은 건우보다 재현이 조금 더 높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재현이 약을 올리는 통에 결국 건우의 인내심이 끊겼다. 그래 내가 졌다, 됐냐?! 언성을 높이는 건우의 얼굴을 보며 재현은 살살 웃었다. 소원 들어주는 거죠? 무슨 소원인데. 건우의 질문에 재현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비밀이에요.

그 눈웃음을 볼 때마다 묘하게 짜증이 나는 것처럼 가슴이 일렁거렸다.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마다 건우는 재현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렸다. 재현은 그래도 그저 웃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

훈련생들에게 화성으로 갈 것인지 여부를 묻는 희망조사서가 날아들었다.

“나는 갈 거예요.”

형도 나랑 같이 가요. 재현의 단호한 속삭임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곧바로 가고 싶은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단호함 속에 깃든 서늘함이 아무것도 묻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에 재현은 겨우 보호자 사인을 받아왔다며 발갛게 물든 눈가로 웃었다. 얼굴이 왜 그래. 건우의 질문에 웃음이 희미하게 굳는다.

“어머니가 반대하셨어요.”

재현에게서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를 배려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인가 했었지만, 같이 지내다 보니 그저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우도 특별히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파일럿이 되는 걸 싫어하시나?”

“아뇨, 원래 군인이셔서. 다만 아직도 멀었으니 훈련을 더 받다가 가라고 하셨어요.”

행간에서, 그리고 재현의 표정에서 읽히는 것이 있었다. 건우는 부러 돌려서 질문했다.

“…우주에 가고 싶어?”

하지만 재현은 돌려서 대답하지 않았다. 건우가 보았던 중에 가장 무표정한 눈동자를 하고 대답한다.

“집에서 나올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요.”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은 봄에 발사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성적으로 지구에서의 훈련을 수료하고 화성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화성에서도 결국은 훈련이다. 여기서 우주 적응에 실패하면 궤도 엘리베이터나 지구 근무를 하게 된다. 어느 정도는 따라온다면 트레이서 탑승은 어렵더라도 태양계 내부의 우주 정거장에서 근무할 수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태양계 내에서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 택한 길은 아니었으나 기왕에 한다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싶었다.

“성계 바깥에 있다는 타르시안의 유적은 여기보다 더 굉장하겠죠?”

같이 보러 가요.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형! 건우 형! 정신 차려요!]

트레이서 기체의 무전을 타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건우는 희미한 시야 너머로 화면에 뜬 재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도 하얗게 질려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시야 전체가 빨갛게 번져있었다.

모의 훈련 도중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인한 부상이었다. 트레이서 기체와 더미 타르시안을 혼동하여 생긴 사고. 화성에서의 훈련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제 트레이서에 탑승하여 이루어졌고, 무기 또한 전부 실전용이었다. 때문에 오인사격으로 인해 트레이서의 일부만 박살나고 살아남은 것은 사실상 행운에 가까웠다. 비록 콕핏 내부가 일부 파손되어, 그 파편을 맞고 부상을 입게 되었더라도.

안와골절 및 시신경 손상.

지구로 내려가서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수술 후 경과도 봐야겠지만 오른쪽 눈의 시력 손상이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안경으로도 제대로 교정할 수 없을 정도로.

교정시력이 0.8 이하면 트레이서 조종사는 될 수 없다. 그래도 함선 근무는 가능했기에 류건우는 그렇게 배속 희망을 전하고 지구로 내려갔다. 오인사격을 했던 후보생은 함선 근무를 하기에도 부적격하다는 판정을 받고 일단은 지구로 내려갔다.

 

 

 

 

 

화성에서 지구까지 문자가 오고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약 하루. 예전보다는 기술이 발전해서 전송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지만 문제는 앞으로였다. 9기 원정대 또한 계속해서 저 멀리 명왕성을 향해서 전진하다가, 종내에는 태양계 바깥 저 멀리 타르시안이 거주하는 성계를 향해 갈 것이기 때문에.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삼 개월.

답장이 오는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리고 재현이 타고 있는 함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문자만 해도 이런데 사진을 첨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전송이 아예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송 중에 파일이 망가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도 단 한 번, 재현에게서 사진이 도착했다.

함선 내부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노이즈가 가득한 사진은 무엇을 찍은 것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문자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오르트 구름을 찍은 것이리라 추측만 할 뿐이었다. 사진의 데이터가 파손된 영향도 있지만 원래도 재현은 사진을 그리 잘 찍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그 사진을 본 순간 텅 빈 공허함이 건우를 잠식했다. 우주의 광활함이나 까마득함 때문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재현이 느끼는 감정이다.

왜. 어째서.

그런 물음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사진 아래에 같이 전송된 문자를 보았다.

 

“…….”

지구에 내려온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함께 맞이했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다시금 혼자가 된 겨울에 건우는 스무 살이 되었다.

 

 

 

 

화성에서의 근무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지구와 약간의 시간의 틀어짐이 있지만 그리 크지 않았다. 지구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건우는 굳이 가지 않는 편이었다. 어차피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가끔 정거장 바깥의 우주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카이퍼 벨트는 이런 느낌일까. 오르트 구름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휴대폰을 열어 재현에게서 전송된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건우 씨, 그 사진 가끔 보던데 그게 뭐예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건우는 고개를 들었다. 화성에서 처음 만난 여성 동료가 빙긋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 밀봉된 커피봉지를 받아들고 건우는 무표정하게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검은 우주 공간. 그 안에 무수히 퍼져 있을 가스나 돌멩이, 소행성 따위의 물질들은 노이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건우는 그 화면을 찬찬히 매만지듯 바라보았다.

“…훈련 동기였던 후배가 보낸 사진입니다.”

“맞다, 건우 씨 9기생이었다고 했었죠. 그쪽에서 사진 보내면 정말 노이즈가 심해지는구나. 어디서 찍은 사진이래요?”

“아마도 오르트 구름일 겁니다.”

건우의 무뚝뚝한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료는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저번에 뉴스 보니까 9기 원정대가 작년에 태양계 바깥으로 벗어났다던데, 그 직전에 보낸 문자인가 봐요? 이렇게 계속 연락할 정도면 많이 친했나 봐요.

그 이후에도 건우는 적당히 동료의 질문에 대답하며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풍화된 사진이 또 닳아버리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오래도록 진득하게.

“혹시 사귀던 사이였어요?”

“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동료의 질문에 건우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동료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건우의 손에 들린 커피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전부터 사실 건우 씨한테 관심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매번 말 걸 때마다 커피도 들고 왔는데, 제 앞에서는 한 번도 마신 적 없는 거 알아요?”

나한테 관심이 없으면 관심이 생기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이미 마음을 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요.

동료의 말에 건우는 제 손에 들린 커피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의미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자, 그렇다고 이미 준 커피를 돌려주지는 말라면서 동료가 시원스럽게 웃는다.

“그……, 후배는, 남자인데요.”

“어머, 건우 씨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런 거 가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동료는 약간 안쓰러운 시선으로 건우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미련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나 했더니……. 사귀기는커녕 고백도 못해보고 이렇게 떨어진 거네요.”

“…….”

건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제가 들은 말을 소화하기도 벅찼다. 머릿속이 빠듯해진다.

좋아한다고? 내가? 신재현을?

함께 지냈던 짧은 1년간의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처음 집에 놀러왔던 재현이 보였던 들뜬 모습. 훈련에서 손발이 딱딱 들어맞을 때마다 느껴지던 고양감. 넌 무슨 사진을 이렇게밖에 못 찍냐며 핀잔을 주니 약간 토라지듯 입술을 오므리던 모습. 재현이 눈웃음을 칠 때마다 휘어지던 눈가와, 그걸 볼 때마다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던 감각.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생일을 맞이했던 때에 느꼈던 충족감.

내가, 신재현을, 좋아한다고.

아직도 머릿속은 삐걱거리며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었다. 이제 와서 좋아한다고 해봤자 마음을 전할 길도, 대답을 받을 길도 요원하다. 재현은 저 멀리 있었고, 문자가 오는 데에는 4년이 걸릴 예정이었다.

4년.

새삼스레 그 숫자에 현기증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급연락은 그보다는 기간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역시나 오래 걸렸고 원정대의 성과를 알리기 위한 통신이나, 지구에서의 공식 지령만이 긴급연락을 통해 전달되었다. 그나마도 타르시안들이 살고 있는 성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그 안에 외행성 정거장으로 배속되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지만 기껏해야 1년 정도일 것이다. 제 쪽에서는 여전히 메시지를 보낼 수 없을 테고.

건우는 머릿속으로 가만히 질문을 건넸다.

나는 널 좋아하는 걸까?

머릿속의 재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       §

 

 

재현은 조용히 휴대폰의 액정을 매만졌다. 시리우스 성계에 도착하고 나서는 심심찮게 타르시안들과 마주쳤다. 앞서 출발한 8기 원정대와도 합류를 마쳤다. 분명 3년 전에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자신과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조종사들을 보고 있자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18살의 신재현이

24살의 건우 형에게.]

재현은 시간을 헤아려보며 문자를 쓰다가 지웠다. 왠지 형이라면 나이차에 신경 쓸 것 같지. 재현은 눈웃음을 지은 채로 액정에 띄운 사진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둘이서 같이 찍은 단 하나뿐인 사진. 건우도 셀카는 잘 찍지 못해서 몇 번이고 다시 찍었었다. 하나라도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더 찍어뒀을 텐데.

갤러리를 넘겨 제가 찍은 건우의 사진들을 보며 또 조금 웃었다. 태반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조금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거나, 구도가 이상한 사진들을 보면서 재현은 또다시 웃었다. 그 웃음이 조금씩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멎었다.

카메라를 보면서 건우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류건우는 환하게 웃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크게 웃을 때에도 그 미소는 어딘가 그늘져 있었다. 외로움이 흉터처럼 눌어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끌렸다. 형이 그런 사람이어서.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향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버리지 못한 애정을 무심함으로 포장하고 애써 버티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그러다가 가끔 그 애정이 희미하게 묻어나오는 이런 표정이 좋아서.

재현은 갤러리를 끄고 다시 메시지 창을 열었다. 몇 번이고 메시지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다가 전송을 눌렀다.

“보고 싶다…….”

답장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까만 휴대폰 화면을 어루만지며 신재현은 눈을 감았다.

 

 

§       §

 

 

24살. 건우는 화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지구로 내려왔다. 늦었지만 희망대로 외행성 우주정거장에 배속되어서 다음 달부터는 천왕성에서 근무할 예정이었다.

작년에 출발한 10기 원정대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부상 이력이 원인이었다. 망할 놈의 부상.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발목이 붙잡힌 감각이 불쾌했다.

발걸음이 무심코 지상에서 훈련을 받던 장소로 향했다. 근처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했던 공원을 잠시 맴돌았다. 어디를 향하든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진하게 뭉쳐 발끝에 채였다.

심장이 기분 나쁜 박자로 뛰었다.

재현아.

신재현.

나는 너를 좋아하는 걸까.

지난 4년 동안 해소하지 못했던 질문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답은 아마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이렇게 헤매고 있는 까닭을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낯익은 공간에서 어쩐지 낯선 기분을 느끼며 발길을 돌리려 했을 때였다.

휴대폰이 지잉 울리는 소리를 듣고 무심히 꺼내들었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지난 4년 간 기다리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휴대폰의 기본 폰트로 나타난 글자가 마치 재현의 단정한 글씨처럼 보였다. 담담하고 정갈하게 속삭인다.

―형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니까.

마지막 말이 건우의 숨통을 붙잡았다. 건우는 한계가 가까워질 때가 되어서야 터지듯이 숨을 내쉬며 헐떡였다.

단 네 줄에 적힌 재현의 애정이 그를 찔렀다. 이걸 어째서 지금까지 인정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선명하게 저를 뒤흔드는 감정을. 흑백 사진 속에서 단 하나 색을 입힌 듯이 너만이 이토록 생생한데.

겁 많고 나약한 자신은 그제야 인정했다.

사랑이었다.

우주 승무원으로 남기를 선택한 것은 그 외에 마땅한 진로가 없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재현의 가까이에 있고 싶었다. 뒤틀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이어놓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답장 칸에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 좋아해. 보고 싶다. 지금 당장 네 곁에 가고 싶어.

몇 번이고 전송을 눌렀지만 오류가 났다는 알림만 무수히 뜰 뿐이었다. 건우는 그 자리에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애써 무시했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몸 밖으로 새어나왔다. 작게 헐떡이며 뒤늦은 후회를 곱씹었다.

그것조차 사랑이었다.

 

 

§       §

 

 

“이번에 타르시안과 대대적인 협상을 시도한다던데?”

10기 원정대와의 합류도 마치고, 다음 지령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새로운 소식에 재현은 휴대폰에서 고개를 들고 말을 꺼낸 파일럿을 바라보았다. 다른 조종사들의 시선도 한데 모였다.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대대적인 협상?”

“중간 행성이나 위성들 중에서 착륙할 수 있는 곳을 하나 골라서 대면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나 봐.”

휴전 협상이 시작된 이래로 타르시안과 대면으로 만나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쟁으로 잘못된 단추를 꿰기 시작했던 탓도 있고, 인간과는 생김새도 사고방식도 다른 외계생명체와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어봤자 서로 전혀 다른 의사소통 방식 때문에 오히려 더욱 오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타르시안과의 소통 방법이 진척된 상황이니 대면으로 협상을 시도해보는 모양이었다.

“괜찮을까…….”

누군가가 혼잣말하듯 던진 의문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현은 지금까지 있었던 타르시안 원정대의 생환 비율을 떠올렸다. 1년의 근무를 마치면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1년은 너무나 길었다. 우주에서도, 지구에서도.

살아남았든 죽었든지 간에 원정대가 지구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1년의 복무 기간을 넘긴 원정대원들 중 대부분은 함선에 탄 채로 이 머나먼 외계에서 근무하는 것을 택했다. 자신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재현은 조용히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출발할 때는 지구의 그 어떤 것도 그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돌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때 건우 형은? 형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형처럼 정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잊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러면 또 너무 오랜 세월 형은 홀로 외로워할 것이다. 형의 그 외로움을 나눌 사람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지만, 그 외로움을 홀로 껴안고 침잠하는 모습 또한 바라지 않았다.

재현은 홀린 듯이 휴대폰을 켜고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쓰고 고쳤던 지난번과는 달리 단숨에 문자를 써내려가다가, 마지막 줄에서 문득 멈추었다.

“…….”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재현의 눈동자를 덮었다. 재현은 차마 문장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문자를 임시저장 했다.

 

 

§       §

 

 

[긴급. 긴급 상황입니다.]

[모든 승무원들은 본인의 정위치로 복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천왕성에서 근무하는 2년 동안 훈련할 때 빼고는 거의 들은 적 없던 긴급 상황 알림이었다. 제 근무 위치로 향하던 도중, 이어서 흘러나오는 기지 안내방송에 건우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중력이 없는 정거장 내에서 건우의 몸은 매끄럽게 흘러갈 뿐이었다. 맞은편 복도 벽에 부딪힐 때까지.

[타르시안과의 휴전 협정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파견되었던 대 타르시안 원정대 중 상당수의 함선이 파괴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승무원들의 긴급 근무 태세를 명합니다.]

협정 결렬? 함선 파괴?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벽에 부딪혀서 멈춰선 채로 건우는 멍하니 들은 내용을 곱씹었다. 다른 승무원들이 복도를 지나가며 건우를 흘긋거리거나 한 마디 던진다. 건우 씨 왜 그래? 방송 못 들었어?

“건우 씨?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

걱정스러운 동료의 목소리에 건우는 자신을 다잡았다. 일단은…… 일단은 관제실로 가야 했다. 가면 소식을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사망자 명단이 뜬 것도 아니니까. 재현의 실력이라면 무사할 것이다.

그런 옅은 기대감은 관제실에 뜬 사망자 명단에 의해 갈가리 찢겨졌다. 붉게 물든 이름이 선명했다.

[신재현]

수많은 이름들 속에 어째서 네 이름만이 이토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까. 건우는 화면에 뜬 붉은 글씨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옅은 헐떡임이 점차 커졌다. 호흡을 조절할 수 없었다. 과호흡이 왔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건우 씨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과호흡인가 본데요. 누구 봉투 있는 사람 없나요?! 괜찮은가? 맞아, 건우 씨 9기생이었다고 했어요. 방금 명단에 친한 사람이 있었던 거 아닐까?

 

 

 

 

휴대폰을 열었다.

오지 않을 문자를 기다렸다.

오지 않을 문자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알림이 오지 않는다.

알림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구 근무를 신청했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술도 담배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외행성에 오기까지 오래 걸렸던 것처럼 지구 근무 발령도 쉽게 나지 않았다. 멀쩡한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기가 힘들었다. 술과 담배가 없다고 해서 정말 온전한 정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근무하는 시간 외에는 하염없이 우주 저편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이전에 전송된 문자와 사진들을 하염없이 넘겨보았다. 가끔은 지구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기도 했다. 어째서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밖에 없을까. 사진 찍는 걸 좋아하면서 왜 그 녀석 사진은 이것밖에 찍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를 곱씹으면서.

곱씹은 후회에서 단내가 날 때쯤에 겨우 지구로 발령이 났다. 이제는 술이나 담배가 그리 간절하지도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제 소지품들을 정리하는 동안 휴대폰이 울렸다. 건우는 고개를 들어 휴대폰을 멀거니 바라보았다가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스팸문자일 것이다. 가끔 오는 스팸문자에 심장이 내려앉은 것도 너무나 여러 번이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멍하니 창문을 보다가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건우는 무심히 알림창에 뜬 문자를 확인하다가 얼어붙었다.

[8기 훈련생 신재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의 이름이 적여 있었다.

순간 붉은색 글씨의 잔상이 겹쳐졌다. 건우는 입을 틀어막으며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자를 눌렀다.

 

 

이어지지 못한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좋아해줘요?

재현이라면 건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신이 깨닫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에 한발 앞서서. 그러면 대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었던 걸까.

나를…….

생각이 이어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다. 격한 감정은 벽이 되어 파도처럼 너울거린다. 어째서 사과하는 거야. 왜 네가 사과를 해. 나야말로 사과해야 할 것이 잔뜩 있는데.

끝까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 같이 사진을 많이 찍지 않은 것. 조금 더 많이 연락하지 못한 것. 방금 네 문자를 스팸문자겠거니 지나쳐 버린 것. 네가 말하기 전까지 소원에 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던 것. 그리고, 그리고…….

솔직하게 널 좋아한다 말하지 못한 것.

“재현아……. 신재현…….”

 

너를 좋아해.

 

어디로도 갈 데 없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주인 없는 속삭임은 텅 빈 우주를 향해 조용히 흩어졌다.

 

 

 

 

§       §

 

 

 

 

“윽…….”

재현의 신음소리가 휴대폰과 함께 콕핏 내부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부서진 콕핏은 이제 곧 조종사를 보호하는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재현의 몸은 부서진 잔해에 맞아 온전치 않았다. 휴대폰이 무사한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간신히 손을 뻗어 휴대폰을 붙잡았다. 가만히 있을 때에도 커다란 통증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를 불사를 듯이 재현을 잠식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것을 참아내며 이전에 임시저장 했던 메시지를 열었다.

아직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재현은 겨우 전송 버튼을 누르고 다시 한 번 신음을 내뱉었다. 건우 형. 건우 형.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를 잊지 말아줘요.’

이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어차피 형은 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오히려 형의 외로움만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할 수 없었다.

‘나를 잊어줘요.’

이건 역시 거짓말이었다. 잊지 않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홀로 외로움을 끌어안고 있을 형을 생각하면, 거짓말도 이내 거짓말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직 좋아한다 고백조차 못했었구나.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말로 꺼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건우 형은 고지식한 사람이라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언젠가 고백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었는데. 얼빠지고 당황한 표정을 상상하자 이런 상황에서도 무심코 웃음이 새어나왔다.

재현은 마지막 힘을 다해 입술을 달싹였다.

―형을 많이 좋아했어요.

 

목소리가 되지 못한 고백이 텅 빈 우주를 향해 나아갔다.

©2023 by MDCR THEATER.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