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그가 반바지 차림일 때면 그 손에는 늘 라켓이 들려 있다. 반바지를 입고 라켓을 든 그의 허연 목덜미가 땀에 젖어 있는 날이면 필시 장관의 아들이라는 친구와 정구를 치고 온 것이다. 그는 정구 실력이 수준급이다. 어깨가 넓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멀리서 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명문대학 교수의 아들이며 수재라는 말을 밥먹듯이 듣는 그는, 잉크로는 엮였되 피는 섞이지 않은 가족이다.
그가 이쪽을 본다. 나는 시선을 돌린다.
창문 너머에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돌려버린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첫날 그가 선물한 새장 속 앵무새뿐이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우린 서류 쪼가리 몇 장으로 이어진 가족이다.
므슈, 라는 웃기지도 않은 별명(사람들이 그에게 붙인 프랑스식 존칭이다.)을 단 그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벌써 몇달 전의 일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한적하게 살던 내게 뜬금없이 새 가족이 (그것도 남자만 두 명이나) 생긴 것도, 이젠 별로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늦은 나이에라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 기쁘다는 그 남자에게는 나보다 세 살 많은 아들이 있었다. 므슈 신이 만약 젊고 더 부드러운 인상이었다면 저랬을까 생각되는 남자였다. 깔끔하고 단정한 셔츠를 입은 그는 언뜻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미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신재현이라고 소개했다. 그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났다.
므슈 신과 어머니는 우리가 이제 형제가 되었으니 정답게 지내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얘길 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원래도 사람과 친해지는 건 특기가 아닌데다 의붓형제란 생각도 못해 본 관계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단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는 어째서인지 기묘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눈웃음은 뱀 같았고 허옇다 못해 창백한 피부는 서양인의 그것 같았으며, 단정하고 사근사근한 말씨는 근지러웠다. 요는, 그와 딱히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당황스럽고 새로운 상황에서 그저 내가 접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만이 기꺼울 뿐이었고,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게 기쁠 뿐이었다. 나는 항상 어머니가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류건우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서먹하거나 사이 나쁜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는 필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와 가족이 되진 못하더라도, 표면적으로나마 온건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있었다. 앞으로 계속 얼굴 볼 사람과 사이 나빠서 좋을 것도 없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차가운 손과 악수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속으로 '그럼 나는 이제 신건우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에서는 경계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내 손을 맞잡은 그 또한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친하게 지내요. 귀여운 동생이 꼭 갖고 싶었거든요.”
그 말은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정하게 들렸지만, 그 귀여운 동생이 된 입장으로서 나는 어째서인지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그러나 잡념은 이내 지워 버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너무 날을 세우는 것도 멍청한 짓일 테니.
다음날 그는 내 방으로 찾아와 까만 털을 가진 새 한 마리가 든 새장을 선물했다. 친구가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거예요. 친구, 친구…… 그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하루종일 그의 꿍꿍이에 대해 생각했다. 단순히 의붓형제간의 예의일 뿐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과하게 그를 경계했고, 지나치게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코끝에선 계속해서 비누 냄새가 맴돌았다.
그 새가 앵무새란 걸 알게 된 건 무심코 중얼거린 혼잣말을 따라하는 걸 보고 내가 까무러칠 뻔한 후였다. 나는 그 앵무새에게 삐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얼마 후 므슈 신은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집에는 그와 나, 그리고 어머니뿐이었다.
그는 종종 오늘처럼 정구를 즐겼다. 처음 그가 라켓을 들고 있는 걸 본 날엔 조금 놀랐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생긴 사람이 반팔 반바지를 입고도 땀을 흘리는 모습이라니. 어머니는 그에겐 무려 장관의 아들씩이나 되는 부잣집 친구와 정구를 즐기는 취미가 있다고 하셨다. 솔직히 그런 것보다는 그가 공부도 운동도 빠지지 않는 부잣집 미남이라는 불공평함에 관심이 갔다. 무서운 놈이다. 나 또한 무난하게 명문 대학에 진학하긴 했지만, 명예나 권력을 떠나서 신재현에게는 태생부터 남들과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날을 세우게 되는 건 그 무언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정말로 (일단 표면적으로는)다정하고 유능한 의붓형이지만, 분명 그것들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관계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창을 닫았다. 그가 집에 들어왔는지 밑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슬쩍 방문을 열고 1층의 부엌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굳이 일부러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행위 따윈 하지 않았을 테지만, 마음 한 켠에서 작은 욕망이 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재현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는 욕망이. 그는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물을 마시고 있었다. 땀에 젖어도 불쾌한 냄새 하나 안 나는 남자라는 비현실성에 조금 질리기까지 했다. 비누 냄새 사이로 미묘한 냄새가 났다. 그는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건우 씨.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요? 아니면 내게 용건이라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건우 씨가 탄산음료를 좋아하는지 몰랐네.”
“그냥 종종 먹습니다. …… 신재현 씨는, 정구를 좋아하시나 봐요.”
컵에 콜라를 따르며 말했다. 부러 돌린 고개 때문에 눈에 보이는 건 넘실대는 까만 액체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나는 그와 아주 가까이서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내 어깨를 가볍게 잡더니 내 몸을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신재현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어쩐지 계속 훔쳐보더라니.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조곤조곤했다. 나는 그 설탕물보다 까만 눈동자 속에서 희미한 웃음기를 보았다.
건우 씨도 관심 있어요?
나는 순간 신재현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잊을 뻔했다. 어깨에 올라간 큰 손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가벼웠다. 오로지 시선. 그의 시선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숨막히게 조용한 공간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냥, 자주 나가시는 것 같길래. 관심은 없습니다. 신재현은 웃었다.
“궁금하면 상대가 되어 줄 수 있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 집에서 심심할 텐데요.”
“주신 선물 덕분에. 괜찮습니다.”
“분명 재밌을 텐데.”
“말을 따라하는 새 쪽이 더 흥미로워서요.”
이런, 그냥 좀 가라 제발. 슬쩍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믿은 내가 병신이지. 오히려 더 모르겠다. 나는 콜라를 단숨에 들이켜 버리곤 슬쩍 걸음을 뒤로 옮겼다. 그는 더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다. 얼굴에 걸친 의뭉스러운 미소뿐만이 그대로였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니 기뻐요. 이름은 지어 줬나요? 나는 그 말에 목소리를 낮춰 답하고는 조금 서둘러 계단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박장대소가 들려왔다. 붙잡힌 어깨가 화끈거렸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므슈 신은 내게 비싼 외제 시계를 내밀었다.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내심 부담스러운 마음이었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 그들 부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죽은 아버지의 성씨가 익숙했고, 어머니와 단둘이던 아담한 집이 가끔 생각났으며, 능글맞은 의붓형이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그와 꽤 자주 말을 붙이고 있었지만 글쎄, 별로 가까워진 느낌은 없었다. 아마 속을 알 수 없는 그 성격 탓이리라. 그러나 가깝진 않더라도 신재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전보다 확연히 늘었다. 예를 들어, 그는 가끔 내 방 문을 두드리곤 뭘 하고 있는지 보고 가곤 한다. 그리고 알고 있는 책도 많다.
“책을 좋아하나 봐요. 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네.”
“예, 독서가 취미입니다.”
“흐음, 좋지. 글을 쓰는 데도 관심 있나요? 어디, 훌륭하게 등단할 수 있을지 한번 봐 줄 수도 있는데…….”
“아뇨, 쓰는 데는… 괜찮습니다. 딱히 흥미도 없고요.”
아쉬워라. 우리 집안에서도 드디어 작가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나도 독서를 꽤 즐기는 편이라서. 보자, 유리알 유희네요? 헤세. 난 그즈음보다도 더, 아주 오래된 책이 재밌는 것 같아요. 한참 옛날 사람들의 가치관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거든요. 그렇습니까. …… 저는 근현대 쪽이 취향이라서요. 하핫, 그래요. 그럴 것 같기도 하네요.
신재현은 생각보다 말이 많다. 과묵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물꼬가 트이면 잔잔하게 말이 많다. 또, 그는 선물을 자주 준다.
“건우 씨, 이번 학기 성적을 잘 받았다면서요. 선물이에요.”
“감사합니다만, 굳이 안 주셔도….”
“받아요. 저번에 이거 갖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았냐. 말한 적도 없는데? 거절도 여러 번이면 민폐이니 받긴 하겠다만.
그런 핑계를 대며 여태 받은 선물만 벌써 다섯 개가 다 되어 간다. 또 신재현은…
“건우 씨.”
“아, 건우 씨.”
“건우 씨, 잠깐…….”
자주 말을 건다. 일단 내가 보이면 무조건 말을 걸어온다. 또 그는, 거리를 좁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늘 갑자기 몸을 붙여오고,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는 습관이 있고, 의외로 큰 소리로 웃는 편이고(이건 나를 비웃을 때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더위도 추위도 그리 타지 않고, 늘 남성용 로퍼를 신으며, 셔츠가 잘 어울리고…….
“…….”
가끔은 뒷마당 느티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나는 그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되었고, 동시에 그에게 많은 정보를 내어 주게 되었다. 그러나 알아낸 것들이 무색하게도 신재현은, 여전히 여러 겹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 같았다. 쉽게 속을 보여 주는 것 같다가도, 한없이 의뭉스러웠다. 다정한 형 같다가도 한없이 남 같았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짓는 미소가 미소 같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올랐다 싶어 고개를 돌면 방금 올랐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는 너무나 완벽한 사람이었으며, 나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 또한 항상 흠 잡을 데 없이 상냥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미스테리했다.
어떤 먼 나라에는 아주 맑고 투명하고 끝도 없이 깊은 호수가 있다고 했던가.
그는 투명하지 않다. 하지만 끝도 없이 깊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멀고도 또 멀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단순히 피 섞이지 않은 형 한 명에게 왜 이렇게 의식이 곤두서는지 슬슬 나 자신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변수를 잡으려다 나 자신이 변수가 된 느낌이다. 본능이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더 다가갔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그러나 그런 말은 이제 이미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알아야겠다. 이 불쾌한 감정의 근원이 뭔지.
신재현이 끝도 없이 거슬린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당장이라도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문 따위로는 그를 막을 수 없을 것 같고, 연막탄의 자욱한 연기로도 나를 감추지 못할 것 같다. 항상 불안하다. 내 공간이 아닌 이 지극히 호화스러운 저택에서는, 항상. 이 집의 일원이 된 이후로 계속해서 신재현이란 의뭉스러운 변수가, 그의 아버지가, 이곳의 모든 게, 한순간에 얻은 내 지위마저도 불안하다. 손 안에 넣고 싶어도 잡히는 게 없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최악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만큼 개같은 건 없으니까. 해결해야 한다. 이 상황이든, 감정이든.
일단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표면적으로나마 그와의 다정한 사이를 보이는 것. 어머니에게 괜한 죄책감을 안겨드리지 않는 것. 그걸 유지하면서 신재현이란 사람을 알아간다. 어머니는 아직도 종종 나를 불러 근황을 묻는다. 형과는 사이가 어떤지 넌지시 묻는다. 새 형이 정구를 무척 잘하니 이참에 배워 보는 것은 어떠냐 슬쩍 제안한다. 살살 돌려 거절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머니는 분명 알고 계실 것이다. 내가 이 집에 정 붙일 건덕지가 없다는 것쯤은.
하아.
내 한숨에 반응한 듯 까만 앵무새가 쫑긋댄다. 이 새조차 거슬린다. 그가 준 선물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듣고 있는 것 같다. 마치 그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 혼잣말을 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문득, 까맣고 윤기나는 털이 신재현의 새카만 머리카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신재현은 좀 더……
긴 목을 훑으며 시선을 내리면, 하얗고 적당히 굵은, 가끔은 땀에 젖어 있는 목덜미가 떠오른다.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긴 팔이, 넓은 어깨에 비해 한 팔에 들어올 것 같은 허리가, 좁은 골반이, 쭉 뻗은 다리가, 그리고…… 고개보다 조금 더 먼저 이쪽을 응시해오는 눈동자가.
관찰해 온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온통 난잡하게 뒤섞인다. 새장 속의 새와 그가 겹쳐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다. 목구멍 밑에서 낮은 욕이 끓었다.
며칠 후 나는 신재현에게 새 라켓을 내밀었다. 신재현은 나를 코트로 끌고 갔다. 거기서 나는 귀하신 분의 아들이라는 그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지수라고 소개한 남자는 일단 겉으로는 나를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악수한 손이 열기로 뜨거웠다. 웃고 있는 입가는 한껏 올라간 채 굳어 있었고, 눈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에는 힘을 얼마나 줬는지 미세하게 힘줄이 돋아 있었다.
“재현이 동생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어요. 동생도 인물이 잘났네.”
“감사합니다, 지수 씨. 제가 정구는 처음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아, 아니야. 우리 재현이 동생이면 나한테두 동생인데. 재현이랑 내가 옛날부터 워낙 연인마냥 붙어다녀서 많이 친해요. 걱정 마.”
손에 힘이나 풀고 말해라, 멍청하긴.
그날부터 나는 매일 신재현과 정구 연습을 했다. 그는 연습이라도 봐 주는 법이 없었다. 내가 숨이 차 기어이 주저앉으면, 공을 주워 들고는 유유히 걸어왔다. 그래도 근성이 있네요. 요령만 더 늘면 되겠어. 그러다 그가 내키지 않는 날이나 지수가 먼저 나서는 날이면, 나는 내 의붓형 대신 그의 친구와도 공을 주고받았다. 지수는 나를 진지하게 상대하는 법이 별로 없었고, 늘 건들거렸다. 또한 ‘그래봤자 쌩 초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래놓고 공을 받아쳐내지 못하면 반칙이라거나, 잠깐 정신을 놓았다며 핑계를 댔다. 갑자기 그만하자며 시합을 물리고는 나와 공을 주고받는 신재현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늘 코트에 나왔다. 그와 합을 맞춰 본지 이틀, 나는 처음 그에게서 느꼈던 불쾌감을 확신했다. 지수는 나를 싫어했다. 비록 겉으로는 반길지라도 말이다. 중요한 건, 그 사실 자체보단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이유겠지.
“더 있게요?”
“예.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먼저 가시죠.”
“건우 씨 고생이네. 그래도 너무 열심히는 안 해도 돼요! 건우 씨가 우리보다 잘하게 되면 우리 꼴이 어떻겠어.”
나는 텅 빈 코트에 홀로 누웠다. 연습이나 하려고 남은 건 아니니. 지수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 굴러들어온 돌이나 다름없어서. 둘째, 격이 다르다고 느껴서. 셋째, 그냥 마음에 안 드니까. 그러나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다르게, 싫어하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알아내는 건 그의 지위가 무색하게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끔 그를 쳐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힘차게 라켓으로 공을 때리는 신재현의 팔에, 그 순간 바람에 들썩이는 머리칼에, 살짝 들리는 상의 아래로 드러나는 허리에, 긴 고랑을 그리며 갈라지는 다리 근육에 온통 그의 시선이 가 있었으니까. 집요하기까지 한 선망의 시선이었다. 덕분에 굳이 관찰까지 하지 않아도 보였다.
그의 눈에 담긴 건, 안구 두 알에 담기엔 너무 진득한 감정이었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신재현을 원하고 있는 눈이었다.
요는 신재현이 왜 가만히 있냐는 것이다. 가끔 몸을 붙여오는 그의 스킨쉽에 들어간 사심이 느껴지지 않을 리도 없는데. 가끔 연인이라도 되는 것마냥 말하는 그 말들이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닐 텐데. 안 그래도 그 드높은 명성에 더 붙나 마나인 작은 명예가 탐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 그걸 네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금세 기분이 더러워졌다. 똥이라도 씹은 기분이었다.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 줄 무언가가 아닌, 애꿎은 쓰레기를 한 손 가득 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트에 뒀던 라켓을 들어올렸다. 라켓 손잡이에 감아 놓은 테이프가 어느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 짓도 벌써 며칠인가. 나는 라켓을 대충 던져 버리곤 신재현이 있을 집으로 향했다. 둘 다 돌아갔는데 나만 남아서 혼자 땅굴 판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을 테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말을 걸어오는 신재현은 은은한 물기에 젖어 있었다. 머리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서까지 비누 냄새가 났다. 보기만 해도 상쾌해 보이는 그는 냉수를 컵에 따르며 말해 보라는 듯 나를 응시했다. 그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에 문득 짜증이 났다. 여태 의붓형제로서 차려 온 예의가 내 안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소랑 다를 게 뭐 있다고 이렇게 짜증이 나지. 여태 잘 참고 좋은 관계를 쌓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병신 같은 새끼 하나 때문에 마음이 술렁거린다. 그런 새끼 하나 때문에…… 그런 새끼 하나가 주체 못하는 감정 때문에. 사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데도. 그 친구가 장관의 아들이든 거지의 아들이든, 신재현을 좋아하고 있든 싫어하고 있든, 신재현이 그걸 알면서 묵인하고 있든 모르고 있든, 전혀 내 알 바 아닌데도.
그래. 내 알 바는 아니지.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친구분이요.”
“응.”
“꽤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당신을.”
“당신?”
“신재현 씨를… 말입니다.”
“그래요?”
대수롭지 않게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그에 왈칵 짜증이 치솟았다. 정구 상대가 되어 줄 때 태도만 봐도 알 것 같던데요.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탁, 그가 테이블에 컵을 내려 놓았다. 그래서요?
“이유가 그거 하나는 아니겠죠?”
“생판 남이 봐도 아는 사실을 당신이 모를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닐 거 아닙니까.”
“아아. 그래서… 싫다는 거구나?”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순간 아득해진다. 젖은 머리칼이 이마 어딘가를 살짝 스쳐 지나간다. 신재현이 싱긋 웃고 있다. 코가 거의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비누 냄새가 토할 것처럼 진하다. 그러나 속은 기꺼이 그의 향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일렁임조차 없다. 신재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상하게 위협적이다. 나보다 조금 더 키가 큰 그가, 고개를 살짝 숙여, 눈을 맞춰 온다. 새까만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을까요?”
“…….”
“사랑스러운 동생이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형으로서 당연히 도와 줘야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니. 그딴 건 나도 모른다고, 씨발. 그걸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제발 찾아가서 빌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말이다. 애써 억누르는데도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다. 말해 보라는 듯 자상한 표정의 신재현과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생각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대가리가 굴러가지 않는다. 씨발, 씨발 그러니까…… 나는……
“그 새끼는…… 끊어내.”
“끊어내?”
“거리를…… 젠장, 거리를 두는 편이.”
“흐음?”
“적당히, 절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욕심이 많은 동생이네.
신재현은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젠장.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목덜미까지 화끈거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 내 꼴이 어떤지는 알 것 같았다. 이런 병신. 병신, 병신. 멍청이. 천하에 이런 등신이 또 있을까. 절교면 절교지 적당히 절교는 또 뭐냐고. 애초에 그놈 인간관계에 내 간섭이 들어갈 여지가 어딨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필요한 인간관계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신이 나갔다, 씨발. 여태 멀쩡한 동생인 척 접근해서 신재현에 대해 알아내려던 계획이……. 푹 숙인 고개를 들 자신이 없어서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리고만 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신재현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럼 이제 형이라고 불러요. 이 정도는 받아가도 괜찮겠지.
고개를 들었을 때 신재현은 이미 없었다. 아마 그의 방에서, 또는 욕실에서 나를 비웃고 있겠지. 그러나 그 후, 신재현은 정말로 더이상 코트에 지수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를 만나러 라켓을 들고 나가는 일도 없었다. 대신, 나는 더이상 그를 이전과 같은 호칭으로 부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면 의붓형과 사이좋게 라켓을 들고 코트로 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