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모자의 실수
“음, 역시 진보적이네요.”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거냐, 지가 보고 싶다 한 거 보는 중인데? 박문대가 건조한 시선을 마주한다. 새카만 눈에 옅게 박힌 빛이 미동 없이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박문대가 어설프게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오랜만의 데이트다, 그냥 넘어가자. 마주쳤던 시선을 돌려 다시 눈 앞의 큰 화면을 본다. 화면 속 익숙한 소년은 화를 냈고, 절망하고 있었다. 초록, 빨간빛의 색색의 광선이 오고 간다. 알아듣기도 어려운 영국식 영어가 빠르게 지나간다. 날카로운 효과음이 서너번 더 울리고, 다시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
“이해가 가질 않아요.”
“뭘.”
“그냥. 순응하면 모두가 사는 거 아닌가.”
단조로운 의문엔 답이 따라오지 않았다. 이런 명확한 선악구도와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대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박문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왼쪽의 빈 자리를 더듬어 리모컨을 쥐었다. 뚝. 화면이 멈췄다. 해리 포터! 웬 허옇게 질린 코 없는 대머리가 잔뜩 성을 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밥이나 먹을까?”
미지근한 시선이 정수리에 꽂힌다. 그래요. 고저없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데이트 한 번 어렵군. 박문대가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뭘…….”
먹지. 뒷말이 먹혔다. 신재현이 뒤에서 그를 끌어안은 탓이었다.
“왜.”
“배 안 고파요.”
우리 반년 만이지 않나. 온점도 찍히지 않은 문장이 강제로 끊긴다. 곧장 다급한 발소리가 중첩되어 울렸다. 끼익, 탁.
문이 닫힌다.
***
“세상이 말세라고 입에 달고 다니긴 했는데.”
세계의 멸망을 눈 앞에서 목도할 줄이야. 한바탕 신재현과 몸을 섞고 동이 트는 걸 끝끝내 보고 나서야 쓰러지듯 잠들었던 기억이 마지막. 박문대는 영 다른 곳에서 눈을 떴다. 낯선 천장도 아니고, 낯선 창문. 온갖 것으로 생채기 나고 더럽혀진 창 너머엔 끝없이 광활한 들판이 있었다.
“씨발…….”
작아진 두 손, 확연하게 낮아진 눈높이, 유독 넓게 느껴지는 고시원만 한 크기의 공간.
[돌발!]
상태이상 : ‘졸업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뭐 이딴…….”
[‘졸업이 아니면 죽음을’]
당신은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의 신입생입니다. 무사히 졸업하지 못할 시, 사망
남은 기간 : D-2557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7년이라는 시간일 것이 뻔했다. 박문대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나는 영국인도 아닌데, 대체 무슨 버그로 여길 입학한거지. 기억도 안 나는 류건우의 어린 몸도 아니고 순전히 처음 겪고, 처음 보는 박문대 몸으로 어린 아이가 됐다. 조막만한 손에 그러쥔 입학장의 거친 질감이 현실임을 자각하게 했다.
“저기, 어디 아파?”
한 상냥한 목소리가 그를 토닥인다. 머리만 쥐어뜯던 박문대가 고개를 들었다.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초록색 눈, 하얗고 동그란 얼굴, 푸석한 갈색 머리, 동그란 안경테. 그리고 영 알아듣기 어려운 영국식 발음. 해리 포터. 이 세계의 주인공. 그리고 그 앞엔 빨간 머리의 남자 아이가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아이의 천진하고 맑은 시선에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듯 했다. 박문대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한 번에 관심을 돌릴 만한…….
“아니. 그냥 머리가, 간지러워서.”
“웩, 안 씻고 다니니?”
하하. 그냥 더러운 놈 되고 말지.
시발.
***
통성명을 대충 마치고, 박문대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가려운거겠지!”라는 질책이 있었지만 웃어 넘겼다) 그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필 여기에 앉힌 건 망할 시스템 때문이겠지. 죽지도 않고 매번 살아서 꾸역꾸역 돌아오는 게 볼드모트랑 다를 바가 없군.
“저, 무운-대.”
“…….”
“벌써 자나 봐, 머리 안 간지러운가.”
“론……!”
다 들린다. 속닥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박문대는 자는 척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려 앉고 눈을 감았다. 해리포터는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살아남았지만, 그의 곁에 남아있던 부모님과 같은 자들은 전부 잃었다. 그의 곁에 있어서 좋을 게 단 하나도 없어. 귀찮고, 목숨만 위협받고. 무조건 살아서 졸업해야하는 박문대에게 해리 포터와 연을 맺어 굳이 험난한 길을 걸어갈 이유는 없었다. 원작의 진성 팬도 아니고. 얄쌍하게 잘 정리된 눈썹이 꿈틀거렸다.
앞으로 7년.
무조건 주인공 패거리와 엮이지 않고 묻혀가는 엑스트라로 살아남는다.
“무운-대, 너 안 자지.”
“…….”
망할, 개 같은 시스템.
***
‘어린 아이 주제에 어른 못지 않게 인내하고 성실하구나!’
와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홀을 울렸다. 박문대는 얼떨떨하게 자신을 환영하는 기숙사생들에게 웃어보였다. 내가 왜……? 천성이 순한 그들은 박문대를 격하게 환영하는 것도 잠시, 금방 텐션이 깎여 교수가 다음 학생을 호명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무채색의 넥타이는 어느 틈에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두 기숙사보단 존재감 없는 기숙사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게 낫지.
“그리핀도르-!”
제 차례의 환호보다 몇 배는 우렁찬 환호가 홀을 가득 메웠다. 하여튼 유난인 건 알아줘야 해. 그 뒤로도 서너 번의 함성이 울렸다. 박문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여러 차례의 환호에도 감흥 없이 큰 소리에 따가운 귀를 매만졌다. 호그와트의 마법은 전부 신기하긴 했지만, 이미 아이돌로서 경험한 팬들의 호응, 그들과의 소통, 여러 컨텐츠들 때문에 딱히 인상 깊진 않았다. 작가가 영국인이니까 이 따위 편가르기를 넣었겠지. 속으로 신랄하게 비꼬며 문제의 해리 포터가 단상 위로 올라가는 것을 구경했다.
톡.
톡톡.
“아임 낫 브리티쉬.”
영국 놈들은 말 못 걸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저도요.”
어? 익숙한 미성. 난데없이 이 곳에 떨어지기 전날 밤까지 들었던 목소리. 박문대가 급히 제 어깨를 두드리는 손을 잡아채곤 뒤를 돌아봤다.
“신재현?”
“반가워요.”
신재현이 박문대를 보며 웃고 있었다. 눈 앞이 일렁였다. 그리고-,
[돌발!]
상태이상 : ‘졸업이 아니면 죽음을(번외)’ 발생!
“씨발…….”
[‘졸업이 아니면 죽음을(번외)’]
당신은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의 4학년인 신재현을 만났습니다. 무사히 졸업시키지 못할 시, 사망.
남은 기간 : D-1461
***
“저만 이 곳에 떨어졌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예상과 같네요.”
“그래, 근데, 너-.”
“음?”
박문대가 신재현을 올려다 봤다. 확실히 체구가 작은 어린 박문대와 달리 신재현은 사춘기를 막 겪고 있는 듯 제법 키가 컸다. 어린 아이로 돌아온 주제에 아이돌일 적 습관을 계속 유지한 것인지, 유독 또래보다 삐쩍 말라 보였다. 어린 애 얼굴에 젖살이 다 빠졌네.
“네가 지금 청려냐? 밥이나 먹어.”
“음.”
또 뭐, 뭐가 불만이냐. 신재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어린 얼굴로 저러니 더 열 받는 것 같군.
“입맛에 영, 안 맞더라고요.”
“주방 가서 부탁하면 되지.”
“……후배님. 제가 그 영화를 어디까지 봤는지 알고 있지 않나요?”
아. 박문대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래 맞다. 회귀하면서 수백, 수천을 겪었을 열여덟과 달리 그 이전의 신재현의 삶은 거의 소멸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없어 연습생이 되기 전 가족들 과의 추억들이 흐려진 탓에 가족애도 없다시피 했다. 열여덟이 된 이후로는 완벽한 아이돌이 되기 위하여 고작 8편이나 되는 시리즈 영화 따위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전의 시간은 봤더라도 묵직한 회귀의 시간에 짓눌려 압사 당했을 터였다. 압사까진 아니더라도 다 낡아 누렇게 바래졌거나 진작 재로 돌아갔겠지.
“그래, 비밀의 방.”
“입학할 때부터 4년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주인공이 불릴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래.”
“그래도 영 딴 시간대에 떨어진 건 아닌 모양이에요.”
“…….”
대답은 없었다. 달고 짠 것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 답게 테이블 위론 보기만 해도 거부감 드는 것들 천지였다. 개중 그나마 담백해 보이는 것을 골라 제 접시로 옮긴 박문대가 신재현에게 조금 잘라 나눠줬다. 이제 막 입학하여 기숙사를 배정받은 신입생이 저보다 훨씬 큰 학생을 챙기고 있는 상황.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 박문대가 혼자 쩔쩔맬 무렵, 신재현은 가당 치도 않다는 듯 익숙하게 박문대가 옮긴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팍팍 먹어라.”
박문대의 타박에 신재현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던 턱관절을 잠시 멈췄다. 이 새끼 방금 한숨 쉬었군. 찰나의 신재현을 눈치 챈 박문대는 개의치 않았다. 그냥, 가뜩이나 안 먹는 애인이 여기서도 식단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따 주방에나 들려 볼까.
박문대가 마저 밥을 먹는 옆모습을 흘끔거렸다. 신재현의 몰골은 겉으론 멀끔해 보였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곳에 뚝 떨어진 탓인지 영 수척했다. 그래도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들이 많은 기숙사라 귀찮은 일은 없었겠군. 잠시만-.
박문대가 움직임을 멈췄다.
청려가?
후플푸프를?
“여기 들어올 때 모자가 한 말 없었냐?”
“음…….”
신재현이 기억을 떠올리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지독하다고 했어요. 한참을 고민하다 물어보더라고요. 어디 가고 싶냐고.”
“그래서.”
“제일 조용한 곳을 달라고 했어요.”
박문대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선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모인 곳이니까.
“그래도 너나 나나, 조용히 있다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같네.”
“제일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마법은 재밌냐?”
“덜 떨어진 놈들은 마법으로 안 되는 점이 아쉽죠.”
미친놈. 박문대는 또 대답할 의지를 빼앗겼다.
“더 먹어.”
어느새 포크를 내려놓은 손에 박문대가 읊조렸다.
“자꾸 먹이려고…, 테스타 박문대도 계속, 그 날 밤도-,”
박문대가 신재현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전보다 훨씬 커진 체격 차에 팔을 쭉 뻗어서도 엉덩이를 살짝 들어야 했다. 신재현은 팔자 좋게 웃고 있었다.
“나 열 하나다.”
“속은 삼십대죠.”
말대꾸는. 주변 시선이 더 쏠렸다. 원체 흔치 않은 두 동양인이 친해 보이니 더욱 관심이 집중된 모양이었다. 박문대가 어색하게 손을 거뒀다. 신재현은 잽싸게 음식을 더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 덕에 박문대의 뒷말을 전부 차단해버렸다. 구렁이 같은 새끼. 박문대도 마저 빵을 입에 넣었다. 텁텁한 밀가루 냄새가 입 안에서 맴돌았다. 뭔 음식이 뭐 이렇게 맛 없어?
***
“성적은 잘 받았나요?”
호그와트에서의 4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신재현의 성적을 물은 박문대는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완벽한 성적표에 이를 갈며 공부했다. 사실 저학년이란 지위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말곤 달리 없던 탓도 있었다. 그 덕에 박문대는 신재현과 같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다. 막상 받고 나서 이 작품의 영재인 헤르미온느를 잊었다는 걸 뒤늦게야 떠올렸다. 이런 사소한 원작 부수기는 별 의미 없겠지. 그렇게 어린 아이의 탈을 쓴 서른 넘은 남성들은 오랫동안 수석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박문대와 신재현은 성적관리로 바쁜 틈틈이 만나 곧 다가올 미래를 얘기했다. 박문대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느라 더듬거렸고, 신재현은 볼드모트의 이야기를 듣더니 몇 년 전 브이틱을 탈퇴한 비한이라 일컬었다.
“그래도 걔가 낫지 않냐?”
“힘이 없어서 그렇죠.”
멍청하고, 멍청한 목표에, 멍청한 수단에. 나긋한 목소리로 하는 신랄한 비난에 박문대는 잠깐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내 신재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어린 톰 리들이 신재현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면 목숨은 건질지언정 제 강력한 수족들은 물론이고 공포와 두려움으로 도배된 그의 평판도 볼품없는 꼴로 나락으로 처박혔을 것이다. 메인 보컬이라는 조금의 쓸모라도 있었던 비한과 다르게 그를 손에 넣어 제 입맛대로 굴려지지도 않고 바로 버려지겠지.
“그래도 3학년까지 안전하게 왔네요.”
“……살아는 있지.”
말 그대로 둘은 겨우 목숨을 부지해왔다. 둘의 4년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봐서 기억이 선명한 2년동안은 다르게, 3편이었던 시리우스 블랙의 에피소드는 기억이 흐릿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에피소드의 가장 큰 축을 장식하는 디멘터를 기억하고 2년 동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패트로누스 마법을 익혔고, 그 덕에 디멘터에게 허무하게 미션을 실패하는 일은 없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던 해리 포터의 1, 2편의 에피소드도 트롤에게 밟혀 죽을 뻔했고, 특히 박문대는 운 나쁘게 바실리스크에게 위협 당해 딱딱하게 굳기도 했다.
“얼마 안 남았어요.”
박문대가 고개를 끄덕이곤 허공을 봤다. 사백 어느 즈음의 디데이. 신재현의 졸업을 앞둔 숫자. 이제 방학을 보내고 오는 9월이 신재현의 7학년, 박문대의 4학년이다. 신재현은 박문대의 잔소리 덕인지 제법 소년 답게 살이 올라 있었다. 물론 본인은 수 백의 시간 동안 극한까지 관리된 몸에 적응하여 그런지 제 몸에 영 불만이 많은 눈치였다. 아이돌 청려 때보다 살짝 둥그스름한 신재현은 타고난 연예인의 체질인 건지 제대로 된 기초 화장품조차 없는 곳에서 고운 피부결과 검고 곧은 머리를 자랑했다. 그러나 매번 샵에서 관리만 받아와서 그런지, 스스로를 꾸미는 데엔 재능이 없었다. 처음 머리를 스스로 잘랐을 때 대차게 말아먹고 난 이후로, 짧고 단정히 정리된 머리는 길게 늘어뜨려 낮게 묶이기 시작했다. 신재현은 제 머리를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박문대는 나름 마음에 들었다. 아이돌로선 절대 보지 못할 신재현의 장발. 이 망할 시스템의 농간에 빠진 이후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4학년을 앞둔 박문대는 제법 성숙해진 테를 냈다. 만으로 14살, 한국나이로 따지면 열여섯에 가까워진 박문대는 오랜만에 겪는 무릎 통증에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이전의 박문대와 제법 비슷한 덩치가 된 그는 몰래 180 돌파를 노렸다. 신재현이 쑥쑥 자라는 그를 보며 180까진 무리겠네요. 라고 하던 소리는 모른 척 무시했다.
두 소년은 호그와트에서 제법 유명한 인사였다. 물론 그들은 제 기숙사생들이 아닌 이상 아무와도 교류를 하지 않았지만, 일단 그들은 훤칠하고 수려한 외모였다. 둘을 보는 여학생들에겐 그들의 찐따력마저 신비주의로 보일 뿐이었다. (아이돌일 적, 상대를 대할 때 미소를 띄우는 습관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 덕에 둘은 어디를 가든 모두의 관심을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남들의 시선에 익숙한 전직 아이돌이었다. 만 명 단위의 팬들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았던 1군 아이돌.
“음?”
“왜.”
“그냥, 익숙한 기분이 들어서요.”
그런 둘에게 고작 몇 십 명이 흘끗 거리는 정도는 그들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굴지 않는 이상 크게 와닿지 않을 터였다. 가끔 신경이 예민한 신재현이 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도 했지만, 청려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죽은 제 외모(…)를 떠올리며 가볍게 넘겼다.
“이번 년도는 무난할 거야.”
“그 대회만 참여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그래. 박문대는 굳이 뒷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한 아이의 허망한 죽음을.
***
기숙사 안이 고요했다. 원래도 시끄러운 곳은 아니었지만, 유독 침울했고, 짙은 절망이 깔려 있었다. 세드릭 디고리가 죽었다. 그것도 볼드모트에게. 이미 알고 있던 박문대와 다르게 신재현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신재현에겐 처음으로 본 다른 이의 죽음. 디고리가 보여주는 순수한 열정과 햇살 같은 성격에 가끔 브이틱 채율을 떠올리는 듯 싶더니 제법 큰 충격으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신재현은 가뜩이나 없는 말수를 더 줄였다. 어차피 학교는 볼드모트의 귀환과 학교 내 유명인의 죽음으로 침체되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박문대가 아닌 이상은 그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이는 없었다. 신재현은 그렇게 족히 사흘이나 되는 시간 동안 입을 열지 않다, 나흘 째 되는 날 처음으로 말을 뱉었다.
“그런 생각을 잠깐 했어요.”
다듬지도 않은 목소리는 거칠었고, 끝이 갈라져 있었다. 박문대는 아무 말도 얹지 않고 들었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그런 생각.”
구구절절 푸념처럼 이어질 줄 알았던 말은 한 마디로 종결됐다. 신재현은 마구잡이로 털어놓는 짓은 절대 못했다. 사흘이나 생각을 되짚고, 몇 차례를 곱씹으면서도 결국 효율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음절마다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섞여버린 감정들이 흠뻑 젖어 있었다.
박문대는 그것이 마치 고해성사 같았다.
***
4학년도 빠르게 지나갔다. 신재현은 우수한 성적과 머글 출신임에도 수많은 스카우트를 제의 받으며 졸업했다. 5학년을 기다리며, 박문대는 신재현에게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여러 차례 안부로 시작되어 걱정으로 끝나던 영어로 된 편지는 개학을 앞둔 전날, 마지막이 되었다.
넓은 양피지 중앙엔 한글로 적힌 한 문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 성인되기 전엔 와라.]
신재현은 그렇게 사라졌다.
뒤에 이어질 내용은 추후 개인 포스타입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