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들어와 실내를 둘러본다. 생명 유지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는 공간이다. 기기 앞으로 다가온 그가 헬멧을 쓴다. 그 위에 손을 얹자, 기기 내부 조명에 빛이 들어와 안을 환하게 비춘다. 그 안에 누군가가 잠들어 있다. 남성이 잠든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곧 기기 위로 홀로그램이 실행된다.
[뉴로바이저 링크 연결]
곧 남성의 눈 앞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2.
어린 소년이 미묘한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궁금한 것 같기도, 두려운 것 같기도 한 눈으로.
발등을 덮을 만큼 기다랗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줄을 지어 행진한다. 행렬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굵은 나무 가지를 갈래갈래 엮은 것을 어깨 위에 얹은 채 걷고 있다.
소년의 눈은 갈래갈래 엮인 나뭇가지 사이를 파고 든다. 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얀 천에 덮인 덩어리가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죽은 사람이야.”
“죽어?”
소년의 눈길을 따라 사람들의 행렬을 지켜보던 남성이 말한다.
“그래. 장례를 치르는 중이래.”
“삼촌은 안 도와줘?”
소년의 삼촌이라는 남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강가에 앉아 캠핑 용품을 정리하던 그는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말을 덧붙인다.
“삼촌 도움은 필요 없단다. 믿는 신이 달라서.”
소년은 삼촌의 말을 되새기는 것처럼 한동안 조용하더니, 곧 의아하다는 듯이 삼촌에게 되묻는다.
“왜 죽었는데?”
“사람은 다 죽는 거야.”
“엄마 아빠처럼?”
소년의 질문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삼촌의 손이 멈춘다. 그의 손이 소년의 볼을 어루만진다.
“응. 엄마 아빠처럼.”
소년은 볼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눈살을 찡그린다. 볼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소년이 삼촌에게 다시 질문한다.
“죽으면 어디로 가?”
“그건 종교마다 달라. 하늘 나라… 천국… 아주 아름다운 곳이지.”
소년은 삼촌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아름다운지 어떻게 알아?”
“그냥. 그냥 그렇다고 믿어.”
삼촌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넌 어떠냐, 문대야?”
[뉴로바이저 링크 종료]
기기에서 손을 떼어낸 남성은 등을 돌려 공간을 빠져나간다. 그의 발걸음에 맞춰 조명이 하나 둘 소등된다.
3.
우주선이 진동한다.
휴게실 당구대 위에서 언제나 평형을 유지하던 당구공과 큐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균형을 잃고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상황을 지켜보던 남성이 버튼을 누른다.
“알립니다. 목적지 근접.”
그러자 기계 음성이 경고음과 함께 우주선 내부 곳곳에 울려퍼진다.
조종실로 향한 그가 버튼 몇개를 누르고 조작하자 시끄럽게 울리던 기계 음성과 경보음이 멎는다. 그리고 곧 조종실 창밖의 개폐막이 걷히자 까마득한 어둠 위를 새하얗게 수놓은 은하가 보인다. 은하 너머로 서서히 드러나는 그 것. 조종석 중앙에 선 남성의 눈에 띈 행성 하나.
“목적지 근접.”
4.
생명 유지 프로그램 공간으로 돌아온 그의 발길이 우뚝 멈춰 선다.
기기 하나가 열려있다. 기기 안은 텅 빈 상태다.
기기 주변으로 물에 젖은 발자국이 복도를 따라 죽 이어진다. 그가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자 조금 열린 문틈새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눈에 띈다. 조금 열린 문 안으로 한 남성이 보인다.
문 앞에 선 그가 말없이 남성을 바라본다.
“가운.”
남성이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서 명령조가 느껴진다.
긴긴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나 지난 것일까. 잠든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남성이 가쁜 숨을 내쉬며 팔 굽혀펴기를 하며 움직일 때마다 바닥으로 물줄기가 비처럼 쏟아진다.
그것이 기기를 채우고 있던 액체인지, 남성의 땀인지 알 수 없다.
드레스 룸에서 가운을 꺼내온 그가 남성의 근처에 선다. 가운을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남성은 본체도 하지 않는다.
몸을 일으킨 남성은 드레스 룸으로 향하며 그의 손에서 가운을 낚아채 지체없이 입는다.
“얼마나 잤지?”
“2년 4개월 18일 36시간 15분이요.”
“사상자는?”
남성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가 남성에게 되묻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죽은 사람 없냐고.”
“아니요. 없습니다. 모두 무사 합니다.”
행거에서 옷가지를 꺼낸 남성의 시선이 그에게서 멈췄다. 무감각한 얼굴이다.
“그럼 가서 깨워.”
5.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일찍이 자리를 지키고 앉은 두 남성을 지나던 사람들이 그들에게 아는 체를 해온다. 한 남성은 반갑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고, 한 남성은 자리에 앉아 목례를 한다.
자리에 앉은 남성이 그의 일행의 남성에게 말을 건다. 그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어이 박 교수 완전 얼었는데. 꽤나 긴장한 모양이다?”
박 교수의 턱 근육이 조금 경직된다. 일행의 장난이 달갑지 않았던 탓이다. 긴장한 탓도 물론 맞다.
“어, 기절 직전이다.”
박 교수의 대응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남성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박 교수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옷매무새를 정돈한다. 왼쪽 가슴팍에 수놓인 ‘박문대’ 세 글자를 손으로 턴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 남성의 등장으로 단번에 정리되었다. 듣기에 좋은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덕이 크다.
정복 차림을 한 남성이 사람들을 향해 걸어와 바른 자세로 선다.
“제가 직접 선별한 분들은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신재현. 탐사를 지휘할 총책임자죠.”
소개를 마친 남성이 사람들을 잠시 둘러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신재현이 옆으로 비켜 서자 홀로그램 입자가 모이더니 곧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한다.
“레티 인더스트리는 밝은 미래를 건설합니다.”
레티 인더스트리의 경영이념 소개를 끝으로 강아지를 품에 안은 장년의 남성이 걸어나온다.
“반갑습니다, 나는 김태인이요. 여러분의 고용주이지요. 2091년 6월 22일에 녹화하고 있으니 이걸 보고 있는 당신들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난 이미 죽었다는 뜻이겠지. 내 자신의 명복을 빌지요.”
사람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여러분과 함께 있는 청려는 내겐 아들 같은 존재요.”
홀로그램의 빛이 반사되어 청려의 눈이 더욱 반짝인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사람이 아니라 늙지도 죽지도 않아요. 신이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을 가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오. 바로 영혼 말입니다.”
아들 같은 존재를 소개하는 말로는 적절치 못한 것 아닌가.
박문대는 김태인의 가차없는 발언에 그를 비정한 영감이라 낙인 찍었다.
고개를 조금 돌려보니 바로 옆에 청려가 앉아있다. 시선을 느낀 청려가 박문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 시선이 맞닿는다. 이럴 때는 표정을 지우는게 최선이라는 판단이 선 박문대다. 청려는 그저 옅은 미소로 목례를 하고 다시 영상에 집중한다.
그 때 갈 곳을 잃은 박문대의 눈에 흥미로운 장면이 실린다.
영상에 빠져들다시피한 사람들을 살피던 신재현의 눈길은 언제부터인지 청려에게 멈춰 있는 상태다.
청려가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에 가까운 기계일 것이다. 그에 반해 신재현이 사람이라면 기계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아무런 표정이 없기에 도무지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박문대는 조금 놀랐다.
굳어있는 게 아니라 화가 난 것 아닐까.
곧 신재현과 눈이 마주친 박문대다. 그를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던 탓이다.
“난 평생 인류의 기원에 의문을 품어왔소. 우린 어디서 왔지? 왜 생겨났을까? 죽으면 어떻게 되지?”
박문대는 청려가 했던 것 처럼 가볍게 목례를 하고 시선을 거둬들인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분을 찾았소.”
그런데 두 사람.
“타이탄족 프로메테우스는 인간과 신을 동일시하였고 결국 올림포스에서 쫓겨났어요.”
얼굴이 똑같다.
“이제, 그가 돌아올 시간입니다.”
완벽하게.
2093년 12월 21일
과학 탐사선: 프로메테우스
탑승 인원: 17명
지구와의 거리: 327조 KM
목적지: 기밀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