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플레이어 원

   “일어나요, 건우 형.”

   누군가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부드럽고 정중했지만 같은 박자로, 같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기 때문에 류건우는 눈을 떴다. 한 번 정신을 차리자 잠은 금방 달아났다. 익숙한 숙소가 아니어서 그랬는지도 몰랐고, 불린 이름이 유명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몰랐다. 보일러 온도를 조절하기 좋게끔 밀폐된 대한민국의 아파트가 아니라, 창문을 열어젖히고 계단으로 뚫린 이층집이었다. 류건우는 자신이 이층 오른쪽 방의 소파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기억처럼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불현 듯 깨닫게 되는 설정값이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소파 앞에 쭈그려앉아 류건우의 이마를 눌러 보는 신청려의 매끈한 얼굴을 마주보자 그가 웃었다. 상황 파악이 안 돼? 그렇게 묻는 것처럼 그린 듯 걸린 미소가 잠시 류건우를 기다렸다. 류건우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가까이 붙은 신청려의 몸을 조금 밀었다. 그는 반항하지 않고 상대가 준 힘만큼 밀려나 주저앉는다. 그제야 바닥에 깔린 카페트가 눈에 들어왔다. 가정집인가? 스튜디오는 아닌 것 같았다. 사방에 벽이 있고, 방음이 잘 되는 듯 튼튼한 천장이 있고, 무엇보다 창문이 열려 있는데 신청려가 의식적으로 굴지 않았으니까.

   그야 늘 의식적으로 구는 놈이었지만 어딘가 달랐다.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드론이나 맞은편 창문의 카메라 따위를 경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처럼. 이미 조건과 실험을 반복한 뒤 매커니즘과 해결책을 준비해 온 사람처럼. 그때서야 류건우는 신청려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설명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여긴 어디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비슷해요. 하지만, 틀렸어.”

   그래서 세트장을 직접 지었나? 스케일 한 번 크군. 류건우는 잠시 이곳이 출연자를 깜빡 속여대는 아포칼립스물 예능일 거라고 착각했다가, 이내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의 가설을 반박했다. 곧 현실이란 가능성이 묵살당하고, 별 도리 없이 짧은 대답을 내려놓는 상대만 남았다는 것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설명해.”

   “일종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라고 형이 말하던데요.”

   “내가?”

“지난번의 형이죠.”

그제야 류건우는 신청려의 형형한 눈빛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냈다. 그 안에 든 것은 가설과 증명으로 반복을 깨달은 이성이 아니었다. 거듭된 반복이 패턴을 깰 까봐 두려운 사람의 눈이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래요. 이번에도 다르진 않네요.”

확인을 마친 신청려가 실망을 숨기지 않고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류건우의 팔뚝을 움켜쥐고 강제로 일으키는 손짓은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불친절이라기보단 서운함의 표출 같았는데, 류건우로서는 이 새끼가 영문도 모르고 네 대답만 기다리는 난 안 보이냐, 라고 말하려다 참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개라도 있었으면 기다리기 좀 나았으려나. 아니, 애초에 어떻게 얼마나 기다린 건지도 모른다고. 그때 방문 앞에서 기다리던 신청려가 마음을 읽은 듯 대답했다.

“개는 키우지 않기로 했어요.”

이 새끼 진짜 초능력 있는 거 아니야?

“초능력도 없고요. 여긴 그냥 지구예요. 존재하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지구?”

“일종의 환상 세계죠. 이미 겪어본 바 있잖아요?”

신청려는 류건우의 표정을 힐끔거리더니 작게 웃었다. 형이 다 말해 준 거예요. 이런 걸 궁금해 할 거라고. 의심이야 좀 사겠지만 너무 정확하게 알아맞히면 아마 믿을 거라고. 내가 아니라 형 본인을요. 류건우는 그때서야 신청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쩐지 열받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따라나섰다. 이층집은 류건우가 빨아들인 정보값과 꼭 같았는데, 신청려는 조금 앞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류건우의 시선이 닿는 곳과 표정변화를 낱낱이 기억하려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징그럽게 굴지.”

“그냥요.”

“정보 독차지하지 말고.”

“심술 좀 부려 본 건데. 싫어요?”

“좋겠냐?”

참다 못한 류건우가 대놓고 짜증을 내자, 신청려는 조금 웃다가 일층 천장 밑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다 내려갔다는 뜻이었는데 류건우는 그가 의식적으로 어딘가의 아래로 숨어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지진이 오는 것처럼. 적어도 재해가 오는 것처럼. 류건우의 걸음이 느려지자 그는 돌아와서 그의 손목을 잡고 걷기까지 했다. 신청려의 불안은 언제나 도사리는 것이라서, 기저에 숨어 기회를 노리는 메타포 같지 이렇게나 살아서 고개를 흔드는 종류가 아니었다. 류건우는 순순히 따라가는 대신 입을 열었다.

“신재현.”

그는 류건우의 손목을 잡은 채로 거실 구석에 놓인 턴테이블 버튼을 누르기까지 했다. 80년대 미국을 주름잡았던 고전의 전주가 노이즈를 품고 흘러나왔다. 지직거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1분이 지나가자 신재현이 숨을 쉬었다. 그동안 오래 참았던 것처럼 느리게, 그러나 빈틈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짧게.

“……이제 말해요.”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넌 알고 있고, 난 모르지.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도. 납치되었다기엔 너무 침착하고 제 발로 들어왔다기엔 긴장했어. 나갈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카메라에 사람 이목이 있는데 창문까지 열어놨잖아.”

“우리가 합의한 정보 같은데요.”

“……여긴 정말로 환상 세계인 거겠지. 그렇다면 네가 알고 있는 매커니즘을 말해. ‘지난번의 나’는 무슨 소리야?”

신재현은 류건우가 원하는 대답을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류건우는 그에게 늘,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노이즈가 잦아질 때마다 신재현의 고개가 미세하게 집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그가 억지로 그러한 행동을 참고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간은 언제나 신재현의 편이었지만 이제 류건우의 무기이기도 했다.

신재현이 바닥에 주저앉아 손짓했다. 류건우는 이게 무슨 어린애들 비밀 놀이도 아니고, 라고 생각했지만 순순히 따라주었다. 신재현은 그가 얼굴에 생각을 다 써 놓는 부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상 세계에서의 무방비가 조금은 달갑다고 여겼다. 서늘한 인상과 날카로운 턱선은 포커 게임에 유용하겠으나 제 사람 앞에서는 방호벽을 두르지 않는 게 단점이었다. 제 사람? 신재현은 스스로가 조금 우스워졌다. 어깨를 붙여 앉자 류건우는 고개를 뒤로 빼면서도 몸을 물리지 않았다. 신재현은 그를 조금 더 시험하고 싶어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순순히 류건우가 원하는 대답을 주었다.

“곧 UFO가 올 거예요. 주기적으로 나타났고, 모두 관측되었죠. 우린…그러니까 ‘형’과 나는 그 UFO를 카메라에 담아야 해요.”

“왜?”

“이유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밝혀진다는 걸 알 텐데.”

신재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류건우는 캐묻기를 그만두고 다음의 설명을 종용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신재현은 동행이 납득할 만한 말보다는 그를 설득하기를 시도했다. 언제나 그랬다. 신재현이라는 사람을 후천적으로 조형한 환경에 함께 내던져졌을 때 류건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폈고, 조건이 변하거나 입장이 바뀌었을 때 같은 선택지를 고르는지 궁금해했다. 그럴 때마다 류건우는, 신재현이 꼭 실패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미션’이죠. 언제나.”

“중요한 건 ‘보상’이야. 언제나.”

오답을 선고받길 기다리는 얼굴이 설핏 웃었다. 형 답네요. 그리고 ‘신재현’은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류건우가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처럼. 마치 그에게 정답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이곳의 주민들은 전부 그 UFO에 빨려들어갔어요. 남은 건 우리 둘뿐이죠. 처음의 ‘설정값’은 할리우드 벌판에서의 힐링 예능이었는데. 조악하다고 생각하는 얼굴이네요.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고르지도 않았겠지만, 그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어요. 시스템의 솜씨죠. 형도 알고 있듯이요. 류건우는 바싹 붙은 어깨가 두려움에 질려 있다고 느꼈다. 신재현은 결말이든 죽음이든 눈 앞에 닥친 재난에 기꺼이 몸을 바치는 타입이었고, 그건 늘 류건우를 기분 나쁘게 했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신재현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것’은 카메라에 반응해요. 시선에도 마찬가지고.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걸 감지해요. 나타나면 턴테이블이 멈출 거예요. 전자기기가 모두 먹통이 되거든.

전부 설명했다는 듯 그가 긴 숨을 토했다. 류건우는 아직도 가장 중요한 것을 듣지 못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런대로 얻어낼 것은 다 얻어냈다고 생각했다. 신재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쁜 기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길게 늘어지며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류건우가 고개를 들고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류건우의 뒤편에 활짝 열린 창문을 보지 않기 위해서. 신재현이 다시 묻는다.

“도와줄까요?”

돌아보지 말아요. 안 된다고 해요. 얇고 날렵한 뺨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류건우는 신재현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아니NOPE.” 그리고 신재현의 손과 함께 그것을 쥐고 셔터에 두 사람 분의 손가락을 겹쳤다. “같이 해야지, 새끼야.” 류건우는 눈을 감는다. 죽음이 그의 뒷목을 차갑게 식혀가고 있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되지?

아마도 다시 눈을 뜨게 되겠지.

이 자식은 몇 번이나 나를 깨운 거지?

상념이 쏘아붙인 것처럼 등에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그건 꼭 포식자를 뒤로하고 숨을 죽이는 피식자의 기분 같기도 했다. 길들일 수 없는 것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불가능한 도전을 일삼는 인물들 같았다. 게임 바깥의 플레이어를 훈련시키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그랬다. 류건우가 카메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사이에 낀 신재현의 차가운 손도 함께 눌렸다. 류건우가 카메라로 얼굴을 덮는다. 그리고 즉시 몸을 돌려 창문을 돌아보았다.

신청려Player의 눈동자가 그를 마주본다.

내가 보여?

그러나 류건우는 자신을 끌어안은 겁쟁이의 팔을 느낀다. 그 힘으로 셔터를 누른다.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반복된 힘으로,

찰칵,

찰칵,

 

찰칵.

©2023 by MDCR THEATER.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